그룹홈 사회복지사의 일기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가 조금 넘는다. 두 딸아이가 배고프다고 전화를 하는 날은 걸음이 빨라지는데, 마스크 때문에 숨 쉬는 일까지 갑갑해져서 마구 깐달이 난다. 이 와중에도 퇴근하기 전의 일들은 머릿속 한가득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만 기다린 아이들 앞에서 그걸 함부로 펄럭이지 않으려면 대문 열기 전부터 속을 단단히 여며야 한다. 여차하다간 내 짜증 폭탄에 어느 아이가 짜부라질지 모른다. 눈치 빠른 남편이 먼저 퇴근했다면 그나마 평화로운 저녁을 보낼 확률이 높아질 텐데.
올해부터 여자아이 네 명이 지내는 아동청소년그룹홈에서 돌봄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고아원’이나 ‘사회복지시설’ 같은 단어를 쓰면 내가 일하는 곳을 설명하기가 수월해지지만 그 단어를 접할 때마다 사람들이 당장 내보이는 동정이나 그 쉬운 이해가 나는 가끔 불편하다. 당신의 복잡한 삶 못지않게 이곳 역시 쉽게 설명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혈연이 아닌 가족 공동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아직은 설익은 듯한 느낌이 뭔가 아쉽다. 표현이 아니라 내가 덜 익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그룹홈이다. 아동공동생활가정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까 그렇게 부른다는 말이다. 번듯한 팻말이나 간판 같은 걸로 찾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여기는 '집'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빌라촌 꼭대기 층, 초인종을 누르면 “누구세요?”하고 인터폰을 받는 그런 집이다. 때로 초인종이 말썽을 일으키면 두 번 세 번 벨을 눌러야 겨우 문을 열어주는 그런 집 말이다. LH에서 수리를 몇 번씩 받아도 가끔 그렇게 말썽이다. 더 환장할 노릇은 인터폰 수리 기사님만 오면 기계가 다시 멀쩡해진다는 거다. 아무튼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하면 환호성을 막 지르기도 한다.
주문한 노트북이 도착하기까지 한 달이 더 걸린다는 소식을 듣고 택배에 가장 안달이 난 아이는 비대면 수업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한 새내기다. 수능을 코 앞에 둔 고3과 보건간호를 전공하는 고2, 어린이집 졸업식도 초등학교 입학식도 한번 치르지 않았지만 이미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버린 8살 어린이도 택배 상자에 술렁이긴 마찬가지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이 사는 집에 세 명의 사회복지사가 돌아가며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생활을 한다. 나는 그중의 한 명이다. 아이들은 우리를 ‘이모’라고 부른다.
개학을 하고도 한 달이 넘었을 사월인데, 이 아이들이 집 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아웅다웅 갇혀 지낸 지도 벌써 40여 일이 넘었다. 2월 19일 이래로 외출을 아예 못하고 있다. 학교도 공부도 마뜩잖다던 아이들 입에서 되레 학교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희한한 세월을 살게 되었다. 다 코로나 때문이다. 바깥 활동이 부족하다 보니 밤 9시에 잠자리에 드는 8살 막내를 습관대로 재우는 일까지 전쟁이 되어버렸다. 아이 몸속 에너지가 채 닳지도 않았는데 날이 자꾸만 저물어버리는 거다.
아까 여기는 집이라고 그렇게 우기긴 했지만, 실상 정부 보조금이나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구조다 보니, 회계의 투명성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 나름의 전문성 때문에라도 이모(사회복지사)들이 챙겨야 할 각종 행정업무와 서류들은 일정량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아이들의 일상만 돌보는 것으로는 택도 없는 업무를 쳐내야 하는 것이다. 뭐, 그래도 괜찮다. 이게 모두 내 일이니까 말이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머리카락, 돌아서면 머리카락, 뭐 이 정도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우리집 어떤 이모라도 각오했던 바다. 아니다. 사실은 죽을 것 같다. 요새 몸이 자꾸 퉁퉁 붓는다. 더군다나 이런 생활의 끝이 안 보인다는 게 더 무서워지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실시 기간’이 당초 예정되었던 기간(4.5)보다 2주 더 연장(4.19)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는데, 두둑하게 비축해 두었던 배짱들이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 것만 같다. 예상 못했던 바도 아닌데 말이다.
좁은 집안에 수십여 일 갇힌 아이들의 욕구가 팽팽해져 간다. 10분 단위로 이모를 붙들고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는 8살 막내부터(이모 좀 제발 내버려 둬), TV나 핸드폰만 붙들면 영혼이 없어지는 같은 고2(그걸 뺏는 순간 또 다른 사부작질이 시작된다, 아니 그냥 책이라도 좀 보면 안 되겠니?), 몇 시간씩 인강을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는 고3(정작 눈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공부한다며? 내신 올릴 거라며?), 캠퍼스 한번 밟지도 못한 채 비대면 수업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고 날마다 짜증 한 바가지인 대학 새내기(그러니까 숙제부터 제대로 하고 성질을 내라고). 이 네 아이의 의식들이 날마다 좁은 집 안에서 예리한 칼처럼 챙챙 부딪쳐 울리는데, 문제는 그 울림의 진폭이 날마다 커진다는 데 있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더 무서운 사실은 집에 가도 그런 애가 둘이 더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하...
2020.04.1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