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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verflowToU Feb 14. 2020

환자의 마지막.. 부탁

[11] 마지막인줄 알았더라면..

  간호학과 학생 시절, 전공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한 간호사의 일화를 소개해주었다.



  암 병동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가 나이트 근무를 하고 있었다. 활력징후 측정과 혈액검사 준비를 해야 돼서 가장 바쁜 5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간호사 스테이션에 있는 환자 호출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지만, 수화기 너머에는 아무 소리가 없었다. 깜짝 놀란 간호사는 부리나케 해당 병실로 달려갔다. 환자의 침대 커튼을 다급하게 제쳤는데, 한 남자 환자가 웃으며 사과를 내밀었다.

  "좀 깎아줘요."

  안 그래도 바쁜 시간인데 웃으면서 사과를 내미는 환자가 너무 미웠다. 보호자 침상에는 간병을 하고 있는 아내가 잠들어 있었다. '옆에 자고 있는 보호자를 깨우던지, 일어나면 깎아달라고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사과를 대충 깎아서 환자에게 건넸다. 그러자 환자가 작게 잘라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충 쪼갰더니, 한 번씩만 더 쪼개 달라고 하였다. 올라오는 짜증을 참으며 한 번씩 더 쪼개어 퉁명스럽게 건넸다.

  "좀만 이쁘게 해 주지... "

  사과의 모습을 보며 투덜대는 환자를 뒤로 하고 황급히 병실을 나섰다.

  며칠 뒤 그 환자는 암으로 인해 하늘나라로 떠났고, 3일장을 치른 후 수척해진 보호자가 병원을 찾아왔다. 보호자는 사과를 깎아줬던 간호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저희 결혼기념일이었어요. 남편은 평소 사과를 좋아하던 저를 위해 사과를 깎아주고 싶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깎을 수 없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자는 틈을 타서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을 한 거였어요. 사실 저는 그때 잠에서 깨어 있었어요. 간호사님이 바쁘신 걸 알지만, 저를 놀라게 해주려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자는 척을 했었답니다. 그때 간호사님이 거절하시면 어쩌나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정말 고마웠어요."

  간호사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병실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한 부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흘린 눈물이었다. 보호자는 울고 있는 간호사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노라고.



  간호사는 사과를 깎아달라는 그 부탁이 자신에게 한 환자의 마지막 부탁이 될 것이라는 걸 몰랐었다. 그리고 그날이 환자의 결혼기념일이라는 것도 몰랐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좀 더 신경 쓰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탁을 뿌리치지 않고 들어준 결과, 비록 잘 깎은 사과는 아니었지만 보호자에게 따뜻한 선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대학교 수업시간에 이 일화를 들은 뒤, 훗날 간호사가 되면 꼭 환자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따뜻한 간호사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졸업 후 일을 하면서 그 다짐을 지킬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주말, 수술 전 집중 관찰을 위해 중환자실에 입실한 환자가 있었다. 응급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태가 악화되면 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금식 상태를 유지해야 했으며, 물을 포함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오랜 금식에 환자는 목이 탔는지 물을 마시고 싶다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언제 수술을 들어갈지 몰라 물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담당 간호사는 아니었으나 환자에게 다가가 상황 설명을 했고, 수술이 끝난 뒤에 기관 내관을 제거하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들어간 수술은 예정보다 오래 걸렸고, 중환자실로 다시 나온 환자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뗄 수 없는 상태였고, 기관 내관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취에서 깨서 의식이 돌아온 환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손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물'

  계속해서 '물'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적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작, 물을 적신 거즈를 입에 물려주는 것뿐이었다. 거즈를 입에 넣어주며 환자에게 말했다.

  힘을 내서 빨리 회복하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고. 그러면 물을 원 없이 마실 수 있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환자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어 갔다. 며칠 뒤, 환자는 끝내 물을 마시지 못한 채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생명을 다했다는 사실도 슬펐지만, 손글씨를 쓰던 간절한 눈빛이 떠올라 더욱 가슴이 쓰렸다.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환자의 부탁을 많이 받게 된다. 그 가운데는 환자를 위해 들어줄 수 없는 부탁도 있고, 바쁜 업무 때문에 들어주지 못하는 부탁도 있다. 이런 부탁들이 마지막 부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만약 마지막 순간에, 인공호흡기로 숨을 유지하는 대신 물을 마셨더라면 하늘나라로 좀 더 편안히 가셨을까...라고.



  학생 때 들었던 '사과 깎아준 간호사'의 이야기가 SNS에서 널리 퍼져있었던 이야기였던 것을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원래 출처를 찾고 싶었지만 찾지는 못했습니다. 간호사와 환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공유되어 공감을 일으키고, 여러 사람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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