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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verflowToU Feb 19. 2022

제발 내 환자가 아니길..

[15] 담당하기 힘든 환자 유형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병원에 합격하고 입사를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3주가량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행을 갔던 때가 날이 풀리기 시작했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거리를 걷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자연스레 여러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옷차림부터 직업, 생활 방식 등 다채로운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이게 여행이 주는 깨달음이구나, 이런 걸 어디서 또 느껴보나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친 뒤 입사한 병원에서 이 깨달음을 한 번 더 되새기게 되었다. 



  살면서 못 보던 유형의 사람들을 일하면서 많이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 이런 사람도 살고 있었구나, 생각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한 번의 근무에 중환자실은 2~5명, 일반병동은 20명 전후의 환자들을 보게 된다. 거기다 보호자까지 세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외래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본다. 그러다 보니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데, 협조가 잘 되는 유형의 환자가 있고, 다시는 얼굴도 보기 싫은 환자도 있다. 보호자도 각양각색이다. 과일이나 간식 등을 주머니에 찔러주시면서 고생한다고 격려해주시는 보호자도 있는가 하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항상 화를 내는 보호자도 있다.


  업무를 하면서 주의를 해야 하거나 의료진을 힘들게 하는 환자와 보호자에 대해서 인수인계를 할 때는 주의하라는 의미에서 인수인계 메모장에 ★ 모양을 적어놓는다. 주의해야 하는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의 숫자가 늘어난다. 병원에서 있으면서 담당하기 들었던 별 표시 입원 환자 유형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협조 안 되는 환자


  항상 어느 병원이나 있는 유형 중 하나가 협조가 안 되고 말을 안 듣는 환자이다. 하지 말라는 행동을 꼭 한다. 그것이 본인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행동임에도 절대 말을 듣지 않는다. 특히나 중환자실에서는 심장까지 들어가 있는 중심정맥관이나 인공기도관, 배액관 등 굵직굵직하고 중요한 관이나 선들이 정말 많이 있다. 좌우로 보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것이 많은데 답답하다는 이유로 손으로 관을 잡아 빼기도 하고 벌떡벌떡 일어나기도 한다.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에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주변 간호사에게 상황을 공유한다. 잘못해서 환자 안전사고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의료진에게도 책임을 묻기 때문에, 최대한 의료진이 옆에서 의사소통하면서 요구를 들어주고 주의를 주는데도 이런 환자는 협조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 덕분에 의료진의 인내심도 고갈되어간다. 

  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안 하는 환자도 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 폐 운동을 열심히 안 해서 점차 산소 수치가 떨어지는 경우 옆에서 계속 운동하도록 격려를 한다. 눈 번쩍 뜨고(ㅇㅅㅇ) 호흡 운동을 하라고 이야기하 다독여도, 아프다고 안 하거나 힘들어서 이따 한다고 한다. 결국 다그치는 수준까지 이르는데, 끝가지 말을 안 듣는 경우 다시 인공기도관을 넣는 등의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환자도 힘들고 의료진도 너무 힘들어진다.


전현직 의료인 환자/보호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전현직 의료인이 입원하는 일들이 있다. 입원하게 되면 작성하는 간호정보조사지에서 직업 등을 물어보다가 알게 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발견되기도 한다. 끝까지 티 안 나면 모르겠으나, 자신도 모르게 의료인 티를 내서 포착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때부터는 바로 인수인계 메모에 ★이 붙는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신규 간호사보단 경력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간호사를 배치한다.

  보호자가 의료인인 경우에도 비슷하다. 환자에 비해 짧은 시간 병원에 머물기 때문에 잠깐 동안 많은 것을 확인하고 얻어내기 위해 행동한다.  병원 돌아가는 흐름이나 의료 행위에 대해서 잘 아는 경우 더 까다롭다. 상당히 디테일하게 물어보거나 일반 환자에게는 일반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정보까지 요구한다. 간호행위 하나에도 매의 눈으로 쳐다보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럽고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같은 의료인으로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도를 넘는 경우들이 있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충분한 근거와 규정에 의한 행위들임에도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에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의료진을 괴롭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또는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알 만한 사람인데, 급하지 않은 요구들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닦달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옆의 환자가 심정지가 되어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의료인이었던 환자가 자신의 자리가 불편하다고 자세를 바꿔달라고 하는 등의 요구를 하는 경우이다. '아는 사람이 더 하다.'라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환자이다.


화가 많은 다혈질 환자


온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항상 분노를 품고 사는 환자들이 있다. 왜 이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은지 병원시설, 입원 규정, 의료진의 행위 등에 화가 잔뜩 나있다. 환자당 한 개의 이불이 제공되도록 규정되어 있고 다른 환자들은 잘 지내고 있는데, 이불을 하나 더 안 준다고 화를 낸다. 환자에게 혈압, 체온, 맥박 등을 체크하러 가면 왜 이렇게 자주 하냐고 분노한다. 환자의 상태를 자주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해도 소용없다. 자신의 상태는 본인이 더 잘 안다면서 짜증을 낸다.

  모든 약에는 식약처에서 정해준 용법 용량이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는 요구를 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병원에 입원할 때 간호사에게 이야기하면 해당 진통제를 4~5번씩 줬는데 왜 더 안주냐고 하면서 기본이 안 되어있다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해당 약의 투약 간격이 얼마 안 돼서 다른 진통제를 주겠다고 해도, 그 약 아니면 효과 없다면서 화를 표출한다.

  필자가 다쳐서 입원했을 때, 하루 종일 혼잣말로 욕을 하고 의료진들에게 끊임없이 화를 내는 환자가 한 명 있었는데 옆에 있는 며칠이 너무 곤욕이었다. 의료진이 눈에서 사라지면 다른 환자들에게 계속해서 의료진에 대한 험담을 했다. 해당 환자 때문에 힘들어하던 다른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른 병실로 옮겨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병동 복도를 걸어 다니면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간호사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환자가 빨리 퇴원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있을지 공감이 되어 내 가슴도 답답해졌던 기억이 있다.


의료진을 무시하는 환자


  요즘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어른들 중에는 아직 여자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간호사를 부를 때 '간호사님',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용건을 말한다. 하지만 나이 많은 분들 중에는 '아가씨'라고 부르고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 것으로 요청해도 알겠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또 아가씨라고 부른다. 몰상식한 사람들이다.

  심한 사람은 성희롱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기도 한다. 옆에서 일하는 간호사에게 '그렇게 해서 애는 갖겠어?', '어젯밤에 뭘 했길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냐'는 등의 말들을 농담이라는 듯이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간호사의 팔을 쓰다듬거나 엉덩이를 손가락을 찌르는 일도 있었는데, 화가 나고 수치스러워도 경고의 한마디로 끝내고 말았던 상황들을 보았다. 정말 심한 경우 상급자에게 보고하기도 하지만 보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사를 아랫사람으로 보는 성향을 가진 환자들도 있다. 대부분의 환자가 간호사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반말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 친목을 목적으로 만난 사이도 아닌데 초면부터 반말로 호구조사를 하기도 한다. 반말로 이런저런 잡다한 요구를 할 때면 간호사도 화가 나곤 한다. 의료진은 환자를 존중해주며 치료하는데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폭언, 성희롱, 반말 멈춰!



 


  서비스업종에서 진상인 고객을 지칭하는 은어로 JS라는 단어를 쓴다. 병원도 ★JS★ 라는 표시를 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의료진을 힘들게 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간호사의 업무가 자체로도 힘들지만, 이상한 환자를 만나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병원으로 가는 출근길에 오늘은 어떤 환자를 보게 될지 생각했던 적이 많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간에도, 어제 있던 ★ 표시의 환자가 제발 내 환자가 아니길 바라면서 출근하고 있는 간호사가 있을 것이다. 환자들이 돈을 내고 치료를 는 입장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맞지만, 의료진도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임을 기억하고 서로 존중하며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힘들게 일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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