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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verflowToU Feb 22. 2022

깜짝 선물 같은 휴식

응급 오프(off)의 추억

회사로 이동하는 아침에 너무 출근하기 싫은 나머지,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의 밀접 접촉 재택근무를 라고 연락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꿈같은 이야기라며 혼잣말을 하던 찰나에, 문득 병원에서 있었던 응급 오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일했던 중환자실의 간호사 근무표 끝에는 그 달 사용한 연차 개수가 적힌 '연차'라는 칸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 (-) 값이 적혀 있었는데, 그 달에 쓴 연차가 없고 오히려 쉬어야 할 주말 및 법정공휴일보다 더 일다는 뜻이었다. 일반 직장인으로 치면 주말에 나와서 추가 근무해야 한다는 다. -1 이면 하루를 더 나와서 일하는 것이고, +1 이면 연차를 하나 써서 하루 더 쉰다는 건데, 못 쉴 때는 -3까지 적혀있는 달도 있었다.


그런데, 병원의 시스템 상 간혹 응급 오프° 라는 것을 받는 일이 생긴다. 병원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퇴원과 입원을 매일 반복하는데, 주말 평일보다 입원 적게 한다. 평일과 달리 외래도 쉬고, 수술도 응급수술을 제외하곤 안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가 적어지는 시점이 생기는데 이때 응급 오프를 받게 된다. 환자가 적어져서 간호사가 1~2명 쉬더라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응급 오프(off): 일을 하지 않는 날(비번)을 off라고 표현하는데, 급하게 off를 주는 것을 응급 오프라고 표현


재미있는 점은 근하기 직전까지 응급 오프를 받을지, 못 받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 미리 알려주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는 언제, 어떤 응급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 그런 일이 발생한다. 기존에 있던 환자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3명 담당할 예정이었던 간호사가 2명밖에 담당 못할 수도 있고, 응급수술이 생겨서 환자가 추가될 수도 있다. 혹은 일반병동에 있는 환자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로 입실하기도 한다. 그래서 출근을 위해 씻는 순간까지도 응급 오프의 유무는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응급 오프의 특성 때문에 쉴 수 있음을 자각하는 시간이 달 다양한 일이 생긴다.


일단, 가장 빨리 알게 되는 경우에는 전날 알게 되기도 한다. '내일 응급수술이 갑자기 생기지 않는 이상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근무 시간 직전까지는 멀리 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미리 연락이 오면, 기숙사에서 쉬고 있거나 병원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일찍 알게 되어 좋긴 하지만, 쉴 것이라 생각하고 놀다가 갑자기 출근하게 되면 상당히 기분이 안 좋다. 어떤 선생님은 당연히 응급 오프를 받줄 알고 가족들이랑 부산까지 놀러 가다가, 갑자기 응급 이식 수술이 생겨서 혼자 급하게 다시 KTX를 타고 올라온 적도 있다. 출근했을 때의 표정은 톡! 건들면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부산에 놀러 가다가 갑자기 출근해야 하면 어떤 기분일까. 우웩.


출근 직전에 문자를 받는 도 있다. 잠을 자다가 Day 근무를 위해 새벽 5시에 눈을 떴는데,  'OOO쌤~ 오늘 응급 오프 드릴게요 쉬세요!'라고 문자가 와있다면 행복한 마음으로 눈을 다시 감을 수 있다. 제일 짜릿한 것 기숙사 룸메이트도 Day근무인데 나 혼자 off를 받았을 때이다. 룸메이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할 때 이불속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면 아주 기분이 좋다.


늦게 아는 출근 후 응급 오프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출근을 했는데 "헐! OOO쌤! 응급 오프 준다고 연락한다는 게 바빠서 깜빡했다ㅠ_ㅠ" 혹은 "..? 내가 쉬라고 연락하지 않았나?"라는 등의 뒤늦은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응급 오프의 기쁜 기분은 좀 깎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양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출근했는데 오프를 받느니, 오늘은 일하고 다음 응급 off 기회를 노리겠다는 생각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할 때도 있다.


간혹 기분이 안 좋은  있다. 당연히 내가 쉴 것이라 생각하다가 연락이 안 와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했는데, 나보다 연차 사용률이 높은 신규 간호사가 응급 오프를 들어가 있는 상황들이 있다. 일반병동으로 전동 가고 남아있는 환자들이 중증도가 높아서 신규 간호사 혼자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출근하게 되는 경우들이다. 이럴 때면 괜히 신규 간호사에게 미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오프가 생기면 계획에 없던 쉬는 날이라 제대로 못 쉬기도 하고, 근무 직전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돼서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깜짝 선물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회사에도 갑자기 쉬라고 하는 날들이 있으면 상여금 받 것처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정신차리니,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도 퇴근을 바라보며 열심히 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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