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병원이나 의원에 안 가본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병원에서 처음 태어나며, 자라다보면 가정의학과나 소아청소년과 등을 가보면서 의원을 경험하게 된다. 성장과정에서 어딘가 다쳐서 입원해보기도 하고, 입원한 지인의 병문안을 가서 일반 병동을 접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중환자실을 가본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중환자실은 병원 방문객에게는 출입통제 구역이며, 질병이 많이 악화되거나특정 수술을 할 때만 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보기 어렵다.
중환자실의 특징
중환자실은 일반 병동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눈에 띄는 차이점을 몇 가지 정리해 볼 수 있다.
중환자실은 일부 침상 빼고는 모두 오픈되어 있다.대부분의 침대가 오픈되어 있는 것은 동시에 여러 환자의 관찰이 용이하기 위함이다. 방에 들어가 있는 침대들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양압 시설이 필요하거나 항생제 다제내성균 등이 있어 음압시설을 사용해야 하는 환자들이 이용하는데, 해당 환자들이 없을 땐 그냥 일반 환자도 배정된다.
오픈된 구조는 응급한 상황에 많은 의료진이 참여하기도 좋다. 중환자실의 특성상 상태가 악화된 환자들이 많아 여러 사람이 붙어서 처치 및 시술을 해야 하는 경우들이 자주 발생한다. 심정지가 되어 환자가 처치가 필요하면 의료진이 다 달려오는데 10명 정도는 거뜬하게 넘는 인원이 달려들게 된다. 보통 이런 환자들은 주변에 달려있는 기계도 많아서 여러 사람이 붙기엔 방은 좁다. 필자가 일하면서 딱 한 번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수술실이 아닌 중환자실에서 흉곽을 열고 수술한 적도 있었는데, 그만큼 공간이 필요한 상황들이 발생하곤 한다.
중환자실은 영어로 Intensive Care Unit이라 하는데, 단어 그대로 집중치료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환자를 깊이 있게 보기 위하여 모든 중환자실 침상에는 모니터가 기본적으로 달려있고,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심전도, 혈압, 산소포화도, 중심정맥압 등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한쪽에는 해당 중환자실의 모든 환자의 모니터를 종합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모니터도 따로 있어서 응급상황에 대처한다.
중환자실 환자들은 고용량의 약을 주입하기 때문에 정확한 용량을 주입하기 위해 기계로 약을 투약하는 Infusion pump, syringe pump를 사용한다. 그 외에도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인공호흡기(Ventilator), 심폐 기능이 떨어지는 환자를 위한 심폐보조장치(ECMO), 신장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지속적 신대체요법 투석기(CRRT) 등 다양한 장비들이 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입실한 환자들 옆에는 기계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대로 기계가 별로 안 달려있으면 곧 일반병동으로 옮길 수 있는 컨디션이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중환자실에는 많은 기기들이 있다.
중환자실 근무를 지원한 이유
간호학과 학생 시절 일반병동에서 실습을 했었는데, 따라다니던 간호사 선생님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란적이 있었다. 담당하게 된 병실이 4개였는데 일을 할 때 계속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가끔 멀리 떨어져 있는 병실을 담당해야 될 때도 있었는데 이럴 땐 평소보다 더 많이 뛰어다녔다. 물론 일이 숙달되면 뛰어다니는 일은 많이 줄지만 동선이 먼 것은 변함이 없다. 활력징후를 측정하든, 약을 주든 이동해야 하는 동선이 너무 멀어서 하나의 행위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또한, 간호해야 할 환자가 숫자가 많다 보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환자 각각의 특징을 잘 파악해서 기억해야 한다. 어떤 환자는 퇴원 준비를 해야 하고, 어떤 환자는 수술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한 환자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으면, 다른 환자가 진통제를 달라고 나타난다. 이런 동시다발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모든 환자의 데이터를 기억해야 한다.
이에 반해 중환자실은 적게는 2명, 많게는 5명을 본다. 대부분은 2~3명 정도 보는데, 동선은 그리 멀지 않게 배치된다. 환자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러 갈 땐 뛰어가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빠른 걸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담당할 환자가 적을수록 기억해야 할 환자에 대한 정보들이 적어진다. 환자의 히스토리, 환자의 투약 스케줄, 의료기기들의 설정값 등 신경 쓸 것들이 두 명의 정보이니 그만큼 헷갈리지 않고 외울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환자 간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 환자를 자세히 살펴보고, 깊이 있는 간호를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중환자실이 좋았던 것 같다.
중증의 환자가 입실하는 곳이기 때문에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어려움이 있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는 곳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은 마치 절벽에 매달려있는 사람에게 손을 뻗어 잡아 올려서 구해주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가 점차 장치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말을 하며 앉아있다 일반 병동으로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볼 때면 보람을 안 느끼고 싶어도 안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병동은 많은 환자를 봄과 더불어 많은 보호자들을 봐야 한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보호자의 출입이 많이 제한되었지만 그전까지는 각종 보호자와 병문안 온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동을 드나들었다. 환자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 봐 보호자들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컴플레인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보호자 응대하는 것이 병동 간호사의 큰 업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중환자실은 상주하는 보호자가 없다. 환자와 의료진만 있다. 때문에 환자의 요구들을 모두 처리해야 하지만, 그래도 환자 수가 적기에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 중환자실에서는 면회시간이 하루 1~2번 정도로 정해져 있고 시간도 짧은 편이라, 보호자가 들어왔을 때 친절하게 잘 응대하면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다 보면 금세 면회가 종료된다. 일반 병동에서 보호자 응대에 많은 힘을 쏟는 것을 본 뒤로는 중환자실의 이런 점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일반병동의 간호사가 기본적으로 하는 간호 행위보다 중환자실 간호사가 하는 행위의 종류가 더 많이 있다. 환자의 가래를 제거하는 흡인(Suction) 행위부터 각종 상처 관리, 중심정맥압 모니터, 체위 변경, 의식상태(GCS) 체크 등 할 수 있는 간호 행위가 많다. 중환자실 종류에 따라 심박출량 모니터링, 심폐보조장치(ECMO) 환자 케어, ICP(두개내압) 모니터링, EEG(뇌파) 모니터링도 할 수 있다. 모니터링해야 하는 값이나 체크해야 할 배액관들이 많을수록 그만큼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 정보들을 통해 환자의 상태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간호사로써 일하면서 단조로움을 겪지 않고 계속 발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일반 병동과는 다른 중환자실의 장점들 때문에 중환자실을 지원했고, 다행히 원한대로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환자실의 힘든 점도 엄연히 존재했다. 중환자실의깊이 있는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의학지식을 머릿속에 넣어야 하고 최신 트렌드도 따라가야 했다. 수많은 의료기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정확한 술기를 하기 위해 숙련이 필요했다. 환자가 화장실을 갈 수 없기 때문에 환자의 대소변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점도 힘든 점 중에 하나였다.(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후에 한번 나눠보도록 하겠다..ㅎㅎ)
그럼에도 중환자실만의 좋은 점들과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환자실을 지원한 것에 대해 하나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오히려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글엔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것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흉부외과 특성이 녹아있는 중환자실에 대해서 안내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