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보내 준 새해 Planner는 작지만 제법 신경을 쓴 다지인에 일별로 몇 가지를 적을 수 있는 작은 수첩 형태였습니다. 핸드폰이 거의 모든 것을 다 해 주는 시대에 Planner에 일일이 계획이나 일정을 적을 일은 많지 않겠기에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할까 싶었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정한 일들의 연속이니, 딱히 적을 무언가 특별한 계획도 없네요. 며칠을 책상 위에 방치만 되다가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반성 노트'
직성데로 밀고 나가고자 했던 시절도 지났고, 어째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내가 하는 말씨 하나 행동하나 가 조심스러운 시절을 살고 있어요. 공자가 말했던 나이별 터득의 지혜는 남 얘기인 듯하고, 시달림에 지치고 내 예민한 성격이 원망스러운 나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반성 노트라는 것을 적어 보기로 합니다. 어차피 날짜별 주어 진 줄 수는 일정하니 가능한 짧게 그리나 효과적일 수 있게 몇 자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다음 날이면, 내가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잘했다고 생각했는지 보며 가능한 같은 일은 반복하지 말자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매일 적지는 않아요. 매일이 반성할 일들로 가득하다는 것도 참 우울한 일일 겁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출근해서 노동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 다시 내일 출근할 준비를 하는 반복적인 일들 속에서 딱히 새로이 접할 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려 많이도 노력하게 되었네요.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어 봅니다. 내가 하는 말 하나 행동하나 가 어떤 모습 인지를요.
많이도 조심스러울 인생에, 이런 일들을 더한다니 무척 피곤하게 들리겠지만, 반성 노트의 시작은 제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함이 더 컸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과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점점 나빠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혹은 일상에서 마주치고 부대껴야 하는 존제들이기에 피해만 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사람들과 그 일들에게 점점 소모되어 가는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그 소모적인 힘을 나에게 다시 되돌리자는 것이 었지요.
집중력이 필요하다면 그 건 아마도 내가 하고 있는 일들과 말에 대해서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일 겁니다. 반성 노트를 적기 시작한 뒤로 조금씩 제 스스로에게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난 지금 이거 해야 돼', '무슨 일이 생기든 집에 무사히 돌아가면 그걸로 오케이',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도 돼' 이런 말들이요.
할수록, 볼 수록 아직도 고요해지지 않은 제 마음을 느끼게 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일이 되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조금 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저라는 사람과 제게 소중한 것들에게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부족하다고 느꼈던 일들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서, 거북이걸음 하 듯 천천히 변해가는 제 모습이 반갑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노력을 하든 삶의 매 순간이 쉽지 않겠지요. 변해가는 제 모습도 오래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다시 중단하고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올 것이고, 다시 어두운 곳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상처를 핥아 주고 있을 날이 또 올 겁니다. 그래도 해 보렵니다. 이제는 그게 중요하다고 믿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