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침몰하다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얻은 수익의 10%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 줘."
동경하기만 했던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친한 친구라면. 비록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매일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면. 저 말들이 오롯이 나를 위해 준비된 응원으로만 들렸던 그 순간을, 지금의 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 가운데, 그 말은 단비처럼 내려앉았다. 그토록 꿈꾸던 삶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인데, 어쩌면 이렇게 잘 통하는지. 그런 그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려 한다는 것. 걱정하지 말라는 그 말 한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응원처럼 울려 퍼졌다.
[매몰]
사람이 어느 한 상황에 완전히 매몰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와의 대화, 그리고 투자. 그것들에만 나를 온전히 내던진 채, 그 외의 것들은 전부 내 관심 밖으로 미뤄두었다. 루틴으로 유지해 왔던 것들도 그즈음 어느새 조용히 사라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이게 평범한 일상이고,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스스로를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매일 저녁 10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그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하루의 일상에 대해서, 평범한 사는 이야기들로 시작해 대화가 무르익어갈 즈음이면 으레 그랬듯 투자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암호화폐 업계 종사자들을 만났다는 이야기, 관련 투자 콘퍼런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그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신세계를 처음 알게 된 것처럼 귀를 쫑긋 세웠고, 메신저 창에서 한 글자도 놓치기 싫어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그 화면 속 어딘가에 내 미래가 담겨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설계된 자리]
암호화폐 투자는 내게 생소한 분야이니 전문가인 그가 다 알려준다고 했다. 마치 나를 어린아이 대하듯 하던 그의 태도. 지금 돌아보면 그 포지셔닝 자체가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설계된 것이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나를 살찌우려고 작정하고 덤벼들었던 그, 아니 그들. 아무런 방어막도 없이 매일을 진심으로만 알고 내 모든 것을 내어줬던 그때의 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참,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그리 필요했던 것일까. 그때의 나는.
[확인]
첫 투자를 하고 1주일쯤 지났을 무렵. 화면 속 AI관련 암호화폐의 차트는 아름답게 우상향 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비중을 더 실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깊이 매몰되어 있던 나는, 그 판단조차 할 수가 없었다.
급기야 수중에 있던 비상금을 꺼냈다. 그와 상의도 없이, 낮 시간에 혼자서 그가 알려준 거래소 계좌로 입금하고 AI 코인에 투자를 진행했다. 그날 저녁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 그는 나를 칭찬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걱정하는 척했다. 혼자 진행하다가 오류나 실수가 생겼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냐며 나를 다그쳤다.
지금은 안다. 그가 걱정했던 건 나의 실수가 아니었다. 자금이 그 사기 거래소에 제대로 입금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을, 그는 걱정했던 것이다. 나를 향한 그 다그침은 걱정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스스로 계속 가라앉히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