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속으로 들어가다
"투자 관련 책 1권 추천해 줄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따로 공유해 줘."
"영화도 따로 추천해주고 싶어, 본 후에 함께 나눠보자."
투자 전문가이자 성공한 친구로 이미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된 그였기에, 그가 하는 말이라면 모두 진실처럼 들렸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잊지 않으려 메모하고, 다시 꺼내 읽고, 그렇게 내 머릿속에 새겼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우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우정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때의 나에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책과 영화를 추천해 주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은 얼마나 달콤하게 내게 닿았을까. 나를 아끼기 때문에, 나의 성장을 바라기 때문에 건네는 말이라고만 믿었다.
[그만의 인사이트]
다음날 그가 바로 추천해 준 책 한 권.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히는 책이었지만, 평소 자기 계발서에 관심 없던 나라 한 번도 펼쳐본 적 없었다. 추천받은 날, 서둘러 한국어 번역본을 구매했다.
틈이 날 때마다 읽고, 기억에 남는 문장을 그에게 메시지로 보내면, 그는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덧붙여 답장을 보내왔다. 그 문구들을 읽을 때마다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그의 메시지를 저장해 두고 몇 번씩 다시 꺼내 읽었다. 내가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함께 보는 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주일쯤 지나자, 이번엔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우정에 대한 영화, 투자의 관점을 담은 영화. 자신에게 인생 영화나 다름없으니 꼭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평소 영화를 잘 보지 않던 나였지만, 어느새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시간을 쪼개 그가 말해준 영화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이상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함께 본다는 감각.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그 느낌. 그 감각이 나를 그가 설계한 세계 안으로 더 단단히 끌어당기고 있었다.
[환영]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반대편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실루엣 같은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날 저녁 그와 대화하며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무심한 듯 말했다.
"혹시 알아, 정말 보였을지도...?"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한마디였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말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 완전히 매몰되면, 보여도 보이지 않고 들려도 들리지 않게 된다는 말. 그 말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그물]
이제야 모든 것이 보인다. 책 추천도, 영화 추천도, 새벽까지 이어지던 대화도. 나를 심리적으로 조금씩 조정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장치들이었다는 것을. 빠져나오기 힘들게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그물들.
그 그물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보려 하지 않았다. 그가 건네는 것들이 너무 그럴싸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드는 일이 그저 좋았다. 관심받는다는 느낌, 나를 성장시켜주려 한다는 믿음. 그 감각들이 나를 스스로 걸어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 모든 것을 그의 친절함이자 영민함으로만 받아들였다. 이 길이 맞는 길이라고, 내가 원하던 곳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그렇게 믿으며, 나는 계속 더 깊이 빠져들어 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