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처럼, 생각처럼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야

by OVO

앞으로 이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야.”


잊을 만하면 아이에게서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하는 말은 대개 이렇습니다.

“어려운 수학숙제를 먼저 하면 숙제 시간이 줄어들 거야.”

“10시 전에 자는 게 어때?”

“친구를 배려하고,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께 장난치면 안 돼.”

“사촌 동생한테 친절하게 말하고, 한 번씩 양보해야지.”


그런데 돌아보니, 저 역시 회사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습관처럼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이 말은 혼잣말로 하지 않습니다. 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깊이 생각하기 전에 불쑥 내뱉는 말이죠. 말로 하기란 참 쉽습니다. 그리고 때론 가볍습니다.


아내가 결혼 전에 제게 붙여준 별명이 ‘로만’이었는데, 뭐든 말로만 한다고 로만이랍니다. 썩 듣기 좋은 말을 아닙니다.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야.'

'말처럼'이라는 표현 속에는 상대방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살짝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을 쉽게 내뱉지 말고, 무엇보다 대화하는 사람을 가볍게 만들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지 않으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생각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야.”


저에게는 꽤 유능하고 논리적이며 똑 부러지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국에서 주최한 토론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간 적도 있는 처제입니다.

스스로 숫자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처제는 회사 업무 중 프로젝트 예산을 수립하고 계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네 돈이면 실수하겠니? 네 돈이라 생각해 봐.”


저는 비영리법인에서 일합니다. NGO기관의 특성상 예산 집행은 무척 투명하고 엄격합니다. 그런데도 가끔 ‘이 돈을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출장 중 식사비처럼 규정상 쓸 수는 있지만, 내 돈이라면 굳이 쓰지 않을 소비들 말이죠. 그 후로는 언제나 장인어른 말씀을 떠올립니다.
'내 돈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내 돈' 지침이 우리 회사 내부 규정보다 더 엄격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정에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회사에서는 주간, 월간업무보고를 작성하고 프로젝트 사업계획서를 결재받고 예산을 집행하지만, 집안일은 대개 철저히 계획하지 않습니다. 생활비나 용돈 지출은 충동적일 때도 있습니다. 회사 기준으로 따진다면 징계를 받을 일이죠.

그래서 이제는 반대로 생각해 봅니다.

'이게 회사 일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말처럼 쉽지 않아'는 타인에게 하는 말이고,
'생각처럼 쉽지 않아'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둘 다 결국은 가볍게 만드는 말입니다.
내 말도, 내 생각도, 그리고 상대방도.


이번 가을에 저는 가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해볼 생각입니다.

연재브런치북을 시작하면서 가구 만드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고 그 말을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회사일처럼 한번 해볼까 합니다.


고요: 가족에게 쉼을 주고,

평화: 오래도록 잘 어울리고 편안하며,

추억: 트렌드가 없는 소중한 삶.


아내에게 '고요와 평화'의 가구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추억'까지 더해야겠다고 말했죠.

돌아보니, 아내는 단 한 번도 제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말처럼, 생각처럼 되도록 해보려 합니다.
말을 무겁게 하고, 생각도 무겁게 해보려 합니다.


그런데 진짜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 하나 있긴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