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안 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1,000만 원짜리 교훈

by OVO

2003년, 22년 이야기입니다.


대학생 때 잠깐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최저시급이 2,500원이었지만, 대리운전은 콜당 13,000원이었습니다. 그중 6,000원은 사납금, 나머지 7,000원이 제 몫이었으니, 사실 최저시급보단 꽤 괜찮았습니다.

제가 일했던 회사의 대리비는 경쟁 업체보다 2,000원 더 비쌌습니다. 다른 회사는 회사 전화번호가 적힌 등산 조끼 같은 옷을 입었는데, 우리는 흰 셔츠에 정장이 근무복이었습니다. 차별화된 서비스였습니다.


첫 출근 기억이 납니다.

저녁 7시, 회사 승합차가 집 근처로 와서 저를 픽업했습니다. 차에 먼저 타고 있던 대리운전 선배가 여러 가지 유용한 꿀팁을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재미있던 건 선배들이 들려준 무용담이었죠.

고객들은 학생처럼 보이는 대리기사에게 꼭 두 가지를 물어본다고 합니다.

운전은 잘하는지, 그리고 왜 이 일을 하게 됐는지.


전역 후 대리운전을 하는 복학생 형은 손님들에게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책값을 벌려고 밤에 대리운전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손님들은 대견해하며 팁을 조금이라도 더 주신다고 합니다.

그 형은 한 번 고급 차를 몰았는데, 손님이 책값에 보태라고 대리비로 10만 원을 주셨답니다.

복학생 형은 6,000원을 회사에 내고 그날 조기 퇴근을 했답니다.


13,000원! 대리운전 비가 참 잘 책정한 것 같습니다.

손님들은 대개 15,000원을 내시는데 거스름돈을 잘 받지 않으십니다. 팁으로 주신 거죠. 드물게 20,000원을 내시고는 팁이라며 잔돈을 받지 않던 손님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한 번은 5성급 호텔에서 콜을 받았습니다. 목적지는 꽤 부촌으로 알려진 아파트 단지.

호텔 로비에서 손님을 만나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발레 서비스로 차량이 준비되는 동안 잠시 기다렸습니다.

로비에 도착한 차는 고급세단, 쉽게 말해 외제차였습니다.


대리운전에서 손님은 대개 조수석에 앉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길을 알려주시려고 조수석에 타십니다. 이번 손님은 조수석이 아니라 뒷좌석에 앉으셨습니다.

5분쯤 지나 손님이 말을 건넸습니다.

역시나 그 질문. “학생은 왜 대리운전을 해? 힘들지 않아?”

그때 복학생 형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저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스토리를 조금 바꿨습니다.

‘책값보다 등록금으로 해볼까?’

"등록금 벌려고 대리운전 시작했어요. 최저시급보다 많이 벌 수 있어서 힘들지만 괜찮습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파트 출입구를 지나 지상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손님과 저는 동시에 차에서 내렸고, 손님은 수고했다며 지갑을 꺼내 대리비를 주시려 했습니다.

손님의 지갑을 뚫어져라 쳐다볼 수 없어서 살짝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두운 밤이라 다른 것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돈을 세는 그 소리가 확실히 보입니다.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보입니다.

이 순간은 길수록 좋습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지폐를 10장 넘게 세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10만 원일 거야, 아니야 이 정도 시간이면, 15만 원일지도 몰라’

손님은 두 번 돈을 세더니 마침내 고생했며 돈을 건네주셨습니다.


1,000원짜리 13장, 만 삼천 원!

두 번 세 번 셀 필요가 없습니다. 설령 그게 1,000원짜리가 12장이든 14장이든.


4년 전, 비슷한 기분을 다시 느꼈습니다.

전시회에 출품할 소파테이블을 만들었는데, 첫 전시회 출품작이라 조금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옻칠로 마감한 비정형 테이블이었습니다.

제가 만들고 있던 테이블을 보며 공방 사람들도 칭찬을 합니다. “저렇게 만들어야 진정한 목수다.’

옻칠 명장이신 선생님께서도 보시며 “이 테이블은 1,000만 원에 팔아야겠다.”며 칭찬을 하십니다.

은근, 아니 큰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전시회 기간 내내 어느 누구도 제 테이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평범한 전시회에는 내가 만든 가구가 어울리지 않지!’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전시회가 끝나고 집에 가져왔습니다. 우리 집에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거실에 둔 테이블을 며칠 동안 지켜보다가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느 공간과도 어울리지 않겠구나!’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뭔가 잘못했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공방 사람들은 나무를 고르는 것부터 매우 신중했습니다. 저는 나무를 따로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누군가 버린 책상을 가져다 재활용했습니다. 자원순환이라며 스스로에게 명분을 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의도했던 테이블의 수종, 크기, 폭 등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임기응변이었습니다. 옻칠을 할 때도 정제칠만 했습니다. 피아노처럼 말끔한 마감을 위해 토분을 바르고 추가 공정을 거쳤어야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기술도 없어서 그 과정을 건너뛰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야 옻칠의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며 그럴듯하게 스스로 포장했습니다. 결국 겉만 번지르하게 만든 졸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 이 테이블을 구매했다면, 아마 저는 그 사람에게 상당한 짜증유발자가 됐겠죠.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머릿속에 22년 전 대리운전 일을 떠올리며 생각했습니다.

기대는 그냥 ‘운 좋게 하나 걸리길’ 바라는 요행이 아니라는 것!


칭찬의 말은 듣기 좋습니다. 격려를 받을 때도 기분이 좋습니다.

칭찬과 격려를 해주시는 분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집니다.

하지만 목공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는데요,

'누군가의 칭찬과 격려만으로 나의 태도나 마음의 변화 없이 괜한 기대는 하지 말자.'

기대에도 값이 있다면 정직한 노력과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구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뭔가 좋아 보이는 남의 것을 모방하거나, 우연하게 멋진 가구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행운을 기대합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물어봅니다.

‘내가 정말 열심히 했나? 아니면 그냥 운을 바라고 있나?’


우연한 행운도 적립된 인간성에서 나오는 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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