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사이
집 앞 편의점에서 2천 원짜리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샀습니다.
제가 만든 가구에 붙였습니다.
버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동안 함께했던 가구였습니다.
결국 버리긴 했지만 3년이나 걸린 이유는
가구를 만들며 들였던 노력이나 추억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이전 글 「반려가구」에서 저는
가구는 가족이며, 50년은 함께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건 제가 만든 가구를 ‘버리고 나서’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구를 만들 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오랫동안 함께할 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가구에 마음과 생각을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구는 가족이 아니라 ‘남’ 이 됩니다.
삶의 방식도, 생각도, 결도 다른 사람과 한집에 사는 어색함.
지금 이야기는,
제가 만들었지만 결국 버린 가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처음 만든 가구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커피 테이블도, 사이드 테이블도 아닌
만든 사람조차 용도를 몰랐던 테이블입니다.
빈티지 가구에 푹 빠져 있을 때
세버린 한센 주니어(Severin Hansen Jr.)의 바느질 테이블(Sewing Table)을 보고 따라 만들었습니다.
세버린의 테이블에는 실, 천 조각, 옷가지 등을 담는 라탄 바구니가 상판 아래 달려 있습니다.
정말 매력적인 가구입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가구가 아니기에 신선했고, 그 테이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똑같이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비슷한 색감을 내기 위해 체리나무를 선택했고,
형태와 비율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두 측판과 다리를 날카로운 삼각뿔 형태로 깎아서 한 점에서 접합되게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안정감이 떨어지고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작대로 구현해보고 싶어서 보이는 대로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역시나 한두 달쯤 지나자 가구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멀쩡하던 서랍이 어느 날부터 열리지 않았습니다.
평행사변형 모양의 서랍이 이 가구의 특별함인데, 저는 이 가구를 특수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서랍을 서랍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가구.
이때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서랍 있는 가구는 만들지 않습니다.
서랍이 필요한 가구는 그냥 삽니다.
처음 만든 이 테이블, 고쳐서 쓸 수 있었지만 잘게 잘라서 버렸습니다.
두 번째로 만든 가구 역시 테이블이었습니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알토(Alvar Aalto)의 가구를 좋아했습니다.
북유럽의 집과 디자인, 따뜻한 목재, 그리고 휘게(Hygge) 라이프.
그 모든 것이 좋아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이 테이블은 마감에 공을 들였습니다.
마감 오일을 7번 발랐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바르고 말리고를 반복했습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상판과 다리의 접합부, 보이지 않는 곳에 생긴 오일 얼룩자국이 너무 거슬렸습니다.
이미 여러 번 덧칠을 했기에 얼룩을 없앨 수도 없었습니다.
나무 무늬결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온 책상으로 테이블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사용하는 수종도 아니었습니다.
한번 마음이 떠나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세 번째 만든 가구도 테이블이었습니다.
근현대 건축에 관심을 가질 때였습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낙수장(Fallingwater)을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그분은 가구도 디자인했습니다.
동양의 간결함,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그분의 철학을 따라 저도 그런 가구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에서 모티브를 얻어 테이블을 디자인했습니다.
모티브. 사실 그 말의 의미를 신중히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건축가 유현준 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알게 되었는데요, 자연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든 건축물도 있고 그 속성을 건축물에 담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가우디(Antoni Gaudí)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성당은 자연의 형태와 질감을 건축물의 외관과 장식으로 직접 옮겨왔습니다.
나무의 가지처럼 갈라지는 기둥, 꽃과 동물의 세밀한 조각들은 자연을 눈에 보이는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반면, 헤르조그 앤 드 뫼몽(Herzog & de Meuron)의 도미너스 와이너(Dominus Winery) 건축물은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돌담 사이로 스며드는 빛, 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햇살처럼 건축 내부에 자연과의 교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내가 만든 테이블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무언가였습니다.
기와의 색을 담고 싶어 상판을 먹으로 칠했습니다. 특별한 먹물, 그러니깐 아주 비싼 먹물을 사서 가구에 칠한 후 특수 마감처리를 했지만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먹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던 탓인지 아내가 물휴지로 테이블을 닦자 손바닥 모양의 먹자국이 물휴지에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아내가 말없이 저를 쳐다봅니다.
저는 아내에게 말합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민망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아내에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검은 상판은 기와를, 상판 아래 있는 지지대는 처마를, 아래쪽 수납공간은 대청마루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말합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네 번째 만든 가구는 [생각대로 안 되는 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글에서 언급한 비정형 테이블입니다.
첫 전시회에 출품한 가구이자, 1,000만 원짜리 환상을 심어준 가구였습니다.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았고, 유려한 곡선과 비정형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조각품 같은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만든 바느질 테이블은 변형이 심했죠.
이번엔 휘어지지 않는 강한 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 같은 현악기는 뒤틀림과 휘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악기 내부에 목재 지지대를 넣습니다.
저도 테이블을 만들 때 상판 아랫부분에 브레이싱 작업을 했고 옻칠로 마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가구도 3년 동안만 함께하다 2천 원짜리 대용량 폐기물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왜 그때 이런 가구들을 만들었을까요?
그 시절의 제 자아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이 조금 나이 들어 보인다 해도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진 않습니다.
바른생활을 하던 그 친구가 한 번씩 반칙 또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할 때, 그 친구가 변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나에게 늘 살갑고 친절해서 나도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차가워질 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은 쉽게 닫힙니다. 그는 변했고 나도 변합니다.
그렇게 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낯섦’ 때문입니다.
낯설다!
그때 가구를 만들던 저는, 참 낯설었습니다.
다른 가구를 베끼거나 비슷하게 흉내 내거나 또는 누군가의 철학을 적당히 따라 했습니다.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오리지널의 깊이는 따라갈 수 없고 헤리티지를 담아낼 수도 없습니다.
내가 버린 가구는 겉만 번지르하게 흉내 낸 짝퉁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닮아 보이나, 본질적으로는 다른 사이비(似而非) 가구.
요즘 저는 가구를 만들 때, ‘미래의 나’를 떠올립니다.
가구 만드는 일뿐 아니라 일상 속 다른 선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일탈, 짧은 유혹, 순간의 잘못된 결정.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미래의 나는 이걸 어떻게 볼까?'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부끄러워지지 않게 미래의 나와 친해지고 싶습니다.
결국 버리긴 했지만 3년이나 걸린 이유는, 과거의 나와 헤어짐이었습니다.
참고자료
셜록현준, 천재로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 진짜 천재일까?, YouTube.
셜록현준, 돌만 쌓아 올려도 훌륭한 건축이 된다?,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