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욕하시면 안 됩니다
장롱면허가 10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운전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 누가 무료로 운전 연수를 해주겠다고 해도 인터넷에 올라온 블랙박스 녹화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운전석 손잡이를 당기려던 손도 슬그머니 뒤로 가버린다. 현대 사회에서 자가용은 출퇴근뿐만 아니라 교외의 예쁜 카페에 갈 때도 필수적이다. 환갑이 넘은 우리 부모님께 늘 당부하는 게 어딜 가더라도 핸드폰, 지갑, 차 키만 챙기면 다른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 꼭 신경 쓰라고 거듭 말씀드린다. 운전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도로를 꽉 메운 차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 많은 차는 어디에 주차하지? 다들 아파트에 사나? 우리나라가 땅이 그렇게 넓었나? 아, 맞다. 내 동생도 지난주에 불법주차 딱지 받아서 4만 원 냈다던데.
지금은 아니지만 마포구 내 한 기관에서 거주자우선주차와 관련된 민원을 접수하는 일을 하면서 말로만 들었던 주차 문제의 심각함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차를 타더라도 항상 주차할 곳이 있는지 반드시 알아보고 목적지를 정하는 게 습관이 됐다. 많은 사람이 살고, 놀고, 일하는 마포구도 항상 주차 공간 부족 문제에 시달린다. 서울 전체가 같은 상황일 것이다. 마포구엔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홍대,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은 연남동, 망원동이 있다. 사람은 많지만, 땅은 좁고, 주차할 곳은 없는데 오늘도 유튜브에선 새로 나온 자동차 광고가 진행 중이며 누군가는 그 차를 산다. 그럼 그 차를 둘 곳은? 아파트의 경우는 가구당 여러 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아파트에 사는 것은 아니다. 거주자우선주차를 신청하는 분들도 마포구에서 살고 일하기 위해서 꼭 주차장이 필요하다. 관련 민원 업무를 하면서 생겼던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1. 저보고 거길 가라고요?
가장 자주 오는 문의는 주차할 곳을 찾는 전화다. 마포구에 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왜 자리가 안 나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보시는 분도 많다.
“선생님, 죄송한데 망원동에는 배정받으실 수 있는 거주자우선주차 구역이 없어요. 기다리셔야 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자리가 나는지 저희도 몰라요.”
“차만 댈 수 있으면 아무 데나 상관없는데, 되는 데 없어요?”
“마포구 내에 주차할 수 있는 곳이면 괜찮으신 거예요? 멀어도 괜찮으세요?”
“네, 상관없어요. 빨리요.”
“〇〇초등학교 근처 공영주차장은 오늘부터 주차 가능하신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네? 어디라고요?”
“염리동 쪽이에요”
“저보고 거길 가라고요?”
“…”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가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 온데”라는 대사가 있다. 갑자기 이 말이 불현듯 생각나는 날이었다.
2. 여기는 신수동이 아니라 현석동인데요?
거주자우선주차를 신청하시는 분 중 집 근처에 거주자우선주차 구역을 발견하긴 했지만, 바닥에 적힌 번호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의 연락이 오면 지도를 보면서 봐 두셨던 곳을 신청할 수 있도록 직접 도와드리기도 한다. 이분도 처음 신청하실 때부터 내가 하나하나 도와드렸고 운 좋게 오래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곳에 배정됐다. 한동안 별말씀 없으셔서 잘 사용하시는가 했더니 전화가 왔는데 내용이 좀 뜻밖이었다. 본인은 현석동에 사는데 왜 신수동에 배정이 됐냐는 거였다.
분명 그분의 구역은 거주지 바로 앞이었다. 이런 걸 왜 물어보는지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전화를 받았으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일단 거주자우선주차 구역 번호는 신수동이었고, 현석동은 옛 지명인가 해서 지도를 켜보니 현석동이란 곳도 있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행히 마포구청 홈페이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신수동은 ‘신수동ㆍ구수동ㆍ현석동ㆍ신정동, 대흥동 일부와 함께 5개 법정동으로 구성된 주거지역’이라는 구청 홈페이지의 설명을 그대로 읽어드렸다. 전화를 끊은 후 더 찾아보니 마포구의 행정구역은 행정동과 법정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16개의 행정동이 26개의 법정동을 관할하는 구조였다. 즉, 행정동인 신수동이 관할하는 법정동 중 하나가 현석동인 것이다. 이런 문의는 처음이었고 나 또한 전혀 몰랐던 부분이라 신기했던 경험이었다.
3. 120,000원이 아니라 12,000원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포…”
“야! 이 종이 이거 뭐야? 나보고 돈 내라고?”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뜸 소리부터 질러서 정말 깜짝 놀랐다.
“선생님, 혹시 거주자우선주차 구역에 주차하신 거예요? 바닥에 번호 쓰여 있는 곳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린이집에 잠시 일 있어서 들어갔다 나왔는데, 10분도 안 지났는데 뭐냐고 이거!”
“그러면 선생님, 차 번호 한 번만 알려주시면…”
“왜? 차 번호 알려주면 당신이 이 돈 대신 내줄 거야? 어?”
이 사무실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거주자우선주차와 관련된 민원을 가진 사람들뿐이라 본인이 설명을 거부했지만, 이분도 아마 그러리라 생각했다. 약 10분 동안 고성을 지르면서 본인의 억울함을 토했다. 이러다가 숨넘어가시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이럴 땐 잠시 숨 돌릴 때쯤에 치고 들어가야 한다.
“선생님, 몇 분 동안 주차하셨던지 상관없이 거주자우선주차 구역에 배정받지 않고 주차하시면 12,000원 부정주차 요금 내셔야 해요.”
“얼마라고?”
“만 이천 원이요.”
“만 이천 원?”
잠시 정적과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끊겼다.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 상황을 말하니 어린이 보호구역 불법주차는 과태료가 10만 원이 넘어서, 그분이 어린이 보호구역 불법주차 과태료로 착각하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왜 갑자기 전화를 끊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나는 이미 10만 원 이상의 욕을 얻어먹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다행인 건 이게 그날의 마지막 전화였다.
근무 기간은 짧았지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늘 그렇진 않아도 정말 바쁠 때는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는 새 부재중 전화만 5통이 찍혀 있었고, 쏟아지는 전화에 서류 처리를 하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폭언과 욕설이다. 하루에 세 명이 연이어 고성에 욕설하는 바람에 눈으로만 엉엉 울었던 날도 있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도 바로 어제 일어난 일 같아서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부디 새해에는 전화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따뜻한 말만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