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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Dec 01. 2022

잘 말아서 눌러주세요

한 입 크기로 썰어서 호로록

   요즘(2022년 7월) 우영우가 난리다. 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도 이야기가 들려온다. 드라마가 주변을 들썩이게 만드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침에는 항상 우영우 김밥을 먹습니다. 김밥은 믿음직스러워요.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예상 밖의 식감이나 맛에 놀랄 일이 없습니다.
 



   나도 김밥을 좋아하지만 그 이유는 우영우와 사뭇 다르다. 내가 김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가장 효율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가공되지 않은 재료들이 많이 들어가고, 가공이 되었다 하더라도 속재료 들은 약간의 열로 조리한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일반적인 한식의 상차림은 밥과 국, 반찬들이 많아서 항상 생각해야 한다. 생각한다고 느끼지 않는 순간에도 생각을 하고 있다. 밥을 먹을 것인지, 국 한 술을 먼저 뜰 것인지, 어떤 반찬에 가장 먼저 젓가락이 향할지. 반면 김밥을 먹을 때는 어떤 김밥을 주문할지 그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주문한 김밥이 나오면, 젓가락으로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씹으면 된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배가 부르고 식사가 끝난다. 


   요즘은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김밥의 단면을 사진으로 찍어 메뉴판에 올려놓기도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재료를 쉽게 골라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정 재료가 들어간 건지 일일이 물어보는 것보다 효율적인 과정이다.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도 가게마다 자신들의 비법 재료나 소스가 있기 마련이다. 참치 김밥에 들어가는 참치를 마요네즈와 섞어 참치마요를 쓰는 곳도 있고, 깻잎을 깔아 참치를 올려 김밥을 말아주는 곳도 있다. 예상 밖의 식감이나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떡볶이나 라면 등 다른 분식 메뉴와 같이 먹을 때는 맛의 밸런스를 위해 일반 김밥을 고른다. 지갑이 두꺼운 날에는 새우튀김이 들어간 김밥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배가 많이 고플 때는 돈가스 김밥을 주문하고, 무엇을 고를지 애매할 때면 참치 김밥을 선택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김밥 집에서는 돈가스 김밥에 돈가스와 함께 잘게 썬 양배추를 넣어준다. 양념이 강하지 않아 심심한 맛이지만 그 조합이 어릴 때 먹었던 경양식 돈가스와 케첩과 마요네즈로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가 떠오르게 한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입맛에 맞는 다양한 조합을 실험해 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면 제각기 다른 김밥 도시락이 풀밭 위에 늘어지곤 했다. 생긴 건 비슷한 것 같은데 집집마다 맛이 달랐다. 작은 김밥 도시락 안엔 엄마들의 정성과 개성이 빼곡했다. 평생 직장인이었던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소풍을 가는 날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어줬다. 등굣길에 24시간 운영하는 분식집에 들러 천 원을 내밀고 김밥 한 줄을 받았다. 지금은 파는 맛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엄마가 만든 김밥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오천 원짜리 한 장은 있어야 김밥을 살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가격대도 다양하다. 사 먹자니 좀 비싼 것 같고, 만들자니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김밥 밀 키트'도 출시됐다. 재료들은 필요한 만큼 조리된 채 포장되어 있고, 따끈한 밥만 준비하면 된다. 까만 김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깔아주고, 재료를 일렬로 배열한 뒤 잘 말아 눌러주면 된다. 그 옛날의 엄마들처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재료 한 가지를 추가하는 것도 좋겠다. 일단 생각은 그만하고 이불속부터 탈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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