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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Dec 14. 2022

님아, 그 거스러미를 뜯지 마시오

그동안은 무사했지만 이번엔?

   난 거스러미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손가락 옆에 생긴 가시 같은 것'이라 생각했을 뿐. 겨울만 되면 가끔 올라오곤 하는 그 가시 같은 것은 눈에도 거슬리지만 손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몸에서 눈에 띄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30대가 훌쩍 지나는데도 여전한 여드름을 짜거나, 매끈한 다리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털을 제거하는 것 등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왼쪽 세 번째 손가락 옆의 '그 가시'를 뽑는 데는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가시의 가장 밑 부분을 잡고, 당긴다. 잠시 따끔한 통증을 느끼지만 제거에 성공하면 금세 잊는다. 물론 한 번에 뽑지 못하면 또 그 고통을 느낄 생각에 짜증이 밀려온다. 손톱깎이를 이용해 가시를 잘라낼 수도 있지만, 아직 내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지 손톱깎이로는 뿌리째 뽑질 못한다.



   일단 가시, 아니 거스러미 제거에 성공은 했다. 피가 조금 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손가락이 홀가분해진 걸 느끼며 거스러미의 존재를 잊고 일상을 보내다 어느 날 왼손 세 번째 손가락의 가장 끝 마디가 퉁퉁 부어 기이한 모양이 된 걸 발견했다. 보통 내 손과 손가락은 아주 찬 편인데 이 손가락의 그 마디는 핫팩처럼 뜨끈뜨끈했다. 다른 손가락은 전부 냉골인데 이 손가락만 뜨거울 수가 있나? 퉁퉁 부은 손가락을 눌러보니 거스러미와 가까운 곳으로 갈수록 통증이 느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씻고,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상은 여전했다.



손가락 우측이 약간의 보랏빛과 함께 부어 있는 모습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었지만 왼쪽 세 번째 손가락의 끝 마디는 여전히 부어 있었다. 이제는 원인을 찾아봐야겠다. 컴퓨터를 켜고 '손가락 끝마디 붓기', '손가락 열감' 등을 찾다가 한 블로그에서 손가락이 비슷하게 부어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 블로그 포스팅은 조갑주위염으로 생긴 고름을 병원에 가지 않고 직접(!) 짜는 내용이었다. 손톱의 거스러미를 뜯어 피가 난 곳에 세균이 들어가 감염된 조갑주위염, 그거구나. 일단 내 손가락은 빨갛기만 하니 빨리 병원으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그때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지역 상품권과 겨우 5천 원 정도의 현금뿐이었다. 병원비를 이걸로 해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역 상품권을 쓸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 하나, 작은 예금 통장을 깨야 하나, 지난주에 잠깐 일한 곳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빨리 보내달라고 얘기를 해봐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주식 계좌의 예수금이 생각났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일회성 병원비를 충당하는 것은 가능한 금액이었다.



   금전 고민을 떨치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이런 일이 흔하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아직 고름이 생기지 않았다고. 하지만 고름이 생기면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5일 치 약과 연고를 처방받고 약국으로 향했다. 다행히 약국에서는 지역 상품권으로 결제가 가능했고 현금과는 다르게 아직 넉넉한 지역 상품권으로 편안하게 결제하고 집으로 향했다. 인터넷이 알려준 거스러미의 원인은 건조한 손과 영양 부족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등이 있었다. 아무래도 요즘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당장 하루 2끼로 맞춰진 일상을 3끼로 바꾸긴 어려우니, 일단 핸드크림을 충분히 바르자. 3일이 지난 지금은 꽤 좋아졌지만, 붓기가 여전한 손가락을 볼 때마다 다신 거스러미를 뜯지 않겠다는 다짐을 재차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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