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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Dec 16. 2022

막막할 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요

정말 무서운 건 시도하지 않고 포기하는 현실이 자연스러워지는 것



  이렇게나 눈이 쏟아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15일이 공공근로 신청 마지막 날이라 피할 수 없었다. 눈이 쌓인 거리를 몇 번씩이나 엉덩방아 찧으며 도착한 주민센터에는 행정민원 창구에 한 명만 남겨두고 다들 제설작업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복지 창구에서는 제설 관련 민원 전화를 받고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내 차례가 돌아오고 공공근로 신청을 위해 왔다고 하니 신청서를 주며 작성하라고 했다. 생각보다 채워야 할 것이 많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걸어서 도저히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마을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다. 폭설 때문에 마을버스는 지연의 지연을 거듭해 기다린 지 20분이 지나서야 승차할 수 있었다. 눈이 쌓인 곳을 계속 걸어서 그런지 발이 너무 시렸다. 눈이라곤 가끔 볼 수 있는 지역에서 태어나 지금은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자주 봐서 그런지 한 해의 첫눈도 그렇게 반갑진 않다. 그냥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뿐. 



  공공근로라고 하면 어르신들이나 하는 일인 줄 알았다. 30대의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지푸라기도 나에게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내 자리는 어디일까. 내 자리가 있긴 한 걸까? 지난 1년은 정기적인 수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피부로 깨닫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가끔씩 일용직 일을 하며 얼마간의 돈을 벌기도 했지만 월세와 생활비 등으로 금세 나가버렸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금액이었다.



  가진 돈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이 늘어난다. 포기하는 것도 늘어나지만 더 무서운 건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의 돈을 벌긴 하겠지만 의식주에 갇혀 나 자신을 가꾸고 개발하는 데까지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처음엔 포기하지만, 그다음엔 포기가 아니라 그냥 엄두를 내지 않게 된다. 나도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계속 뒤로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뒤로 뒤로 가다가 결국 현실의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떠밀려 평생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될지 모른다.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로는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당장 마주한 나의 현실은 공공근로라도 신청해야 할 상황이지만 아직 내일의 가능성을 0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직 나에겐 불안을 견디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불안정, 불확실, 불행에 꺾이지 않는 마음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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