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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Dec 31. 2022

2022년의 마지막 외출에서 생긴 일

그리고 그냥 하고 싶은 말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가 있다. 나에게는 대형마트가 그러하다. 밝은 조명, 많은 사람들, 적당한 소음, 그리고 볼거리가 가득하다.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물론 늘 원하는 것을 다 살 수 없다는 것에 애석함을 느끼지만. 



  요즘 아침저녁으로 샐러드를 열심히 먹고 있어서 샐러드용 채소를 사려고 잠시 한 대형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삐- 삐- 소리가 났다.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던 찰나 보안요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혹시 다이소에서 사신 물건 있으신가요?"


  "네? 네, 있어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다이소에서 산 물건 바코드 때문에 울린 걸 수도 있어서요."


  "저 마스크 4개 샀는데..."



  주섬주섬 다이소 스티커가 붙어있는 4개의 마스크를 꺼내서 보안요원의 손에 건넸다. 마스크 포장지의 앞뒤를 살피더니 4개 중 플라스틱 바코드가 붙어있는 3개의 마스크를 가지고 가서 어떤 기계에 갖다 댄 후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다.

 


"혹시 계산하고 나가실 때 또 소리가 나면, 다이소에서 산 물건이라고 말씀 한 번 해주세요. 입구에서 체크했다고요."


"네, 감사합니다."



  다이소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는 무인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는 게 아니라 포장지에 붙여진 스티커의 QR코드를 바코드 리더로 찍은 후 계산했기 때문에 뒤에 이런 플라스틱 바코드가 붙어있는지 전혀 몰랐다. 심지어 같은 품목이더라도 플라스틱 바코드가 붙은 게 있고 아닌 게 있었다.  



  12월 30일, 2022년의 마지막 금요일, 어둠이 내린 초저녁의 마트는 한산했다. 딱 사람 구경 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겨우 6천 원짜리 샐러드 야채만 손에 들고 나왔지만 잠시 사람들의 온기를 쬐고 찬바람이 부는 바깥으로 나왔다. 마스크 속으로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추워서 그런가. 내일을 생각하니 외투를 단단히 여며도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다. 추워서 그럴까.






  내일은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가야 한다. 벌써 추석 이후로 단 한 번도 부모님 집에 내려가지 않았지만, 포항으로 무슨 여행을 가자고 해서 그냥 끌려간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고. 한 이삼일 있다 다시 올라오겠지만 몇 주 뒤 설날에 또 집에 내려가려니 돈이 너무 아깝다. 왕복 기차 비용만 거의 10만 원이 드는지라 만원 한 장도 소중한 지금의 나에게는 부담이다. 사실 난 대학까지 졸업한 내 고향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기억도, 만날 사람도 없다. 본인들이 원하는 것만 요구하는 부모님은 나에겐 늘 짐이었다. 한국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순 없겠지만. 오늘은 12월 31일이자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년엔 거침없이 내 마음이 가는 선택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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