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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Dec 26. 2022

거절하기 미안하지만

원하지 않는 선물을 받았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달 전 입상한 공모전에서 기념품을 보내준다는 연락이 왔다. 입상 후 한 달이나 지난 터라 까맣게 잊고 있다 오늘 도착한다는 택배 문자를 받고는 생각이 났다. 현관 앞에서 잠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 주변이 조용해졌을 때 현관을 열어보니 기다란 박스 하나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박스를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세워보니 거의 내 배꼽 근처에 올 정도로 긴 박스였다.


 

현관을 꽉 채우는 정말 긴 박스



  들어보니 무거운 건 아닌 듯한데, 뭐가 들어있길래 이렇게나 길지? 뜯어보니 우산과 피크닉 매트, 필기도구, 공모전 입상 에세이를 모은 책 등등 여러 종류의 기념품이 들어있었다. 박스가 이렇게 길어진 건 장우산 때문인 것 같았다. 박스를 버리기 위해 펼쳐보니 박스가 정말 길어서 쓰레기 장으로 가는 내내 긴 스크린을 들고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산, 피크닉 매트, 필기도구 다 그다지 좋아하는 선물이 아니다. 필기도구는 몇 년 치 쓸 분량을 가지고 있고, 우산은 이미 3개나 있으며(전부 선물 또는 기념품으로 받은), 피크닉 매트는 한 달 전쯤 1인용 매트를 어디선가 기념품으로 받았다. 이번에 받은 건 3명까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것이었지만, 누군가와 피크닉을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그마저도 한 개면 모르겠는데 두 개다. 장우산도 두 개, 피크닉 매트도 2개씩이라 다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환영할 수 없는 선물이랄 것도 없었다. 있으면 다 어떻게든 쓰게 돼 있고 굳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하나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갖추고 사는 3년 차 자취인에게 물건은 언제나 과유불급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보낸 사람에게 돌려주거나, 안 쓰고 버릴 수도 있겠지만 둘 다 좋지 않은 방법이다. 보낸 사람에게 돌려주는 건 자칫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에게 쓸모가 없다고 준 사람에게 돌려주는 건 나 자신만 생각한 결정이다. 쓰지 않고 버리는 건 엄청난 낭비고.



  우산은 펼쳐보니 튼튼하고 좋은 재질이었고, 피크닉 매트도 때가 잘 타지 않고 오염이 생겨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지금 상황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거나,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 집 어딘가에서 잠들거나. 아마 후자가 될 것 같다. 꼭 필요한 주인을 만났으면 그 쓰임새가 더 빛이 났을 텐데, 이미 가진 게 많은 나에게 와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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