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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Dec 23. 2022

같은 곳에서 만나지 못할 두 사람

영화 <초속 5센티미터> 2부 Cosmonaut 주인공 '카나에' 시점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초속 5센티미터> 포스터

 



  영화 <초속 5센티미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첫사랑(아카리)을 그리워하는 남자(타카키)의 이야기다. 영화를 구성하는 3가지 에피소드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은 타카키지만 지금부터 살펴볼 2부에서는 새로운 주인공 ‘카나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카키와 카나에는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이다. 카나에는 중학교 2학년 때 전학 온 타카키에게 반하게 되고, 열심히 공부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파도를 타는 소녀 카나에는 파도타기에 성공하는 날 타카키에게 고백하기로 다짐하지만 쉽게 파도타기에 성공하지 못하며 졸업 때까지 말하지 못하게 될까 봐 마음을 졸인다. 반면 타카키의 아카리에 대한 감정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수신자가 없는 문자를 썼다 지우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카나에가 타카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는 모두 독백이지만 굉장히 구체적이다. 독백에서 알 수 있는 그녀의 감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변화한다.




   ‘만약 나에게 강아지처럼 꼬리가 있었다면 분명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마구 흔들었을 것 같다. (중략)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타카키와 함께 집에 가는 건 행복했다



   ‘타카키를 볼 때마다 더욱 좋아져서 그것이 두렵고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만날 때마다 행복해서 나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타카키가 있는 곳에 오면 가슴속 깊은 곳이 조금 아려온다. 타카키의 다정함에 가끔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카나에가 파도타기에 성공한 10월의 어느 날, 마침 카나에의 스쿠터가 고장 나 타카키와 카나에는 함께 걷게 된다. 그녀는 둘의 거리가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며 결국 마음을 말하지 못했고, 차마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마음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이어지는 독백에서 카나에가 고백하지 못한 이유가 나오는데, 이건 영화로 확인할 것을 추천한다.



   카나에가 타카키에 대해 가진 감정은 한 마디로 말하면 ‘짝사랑’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매체들은 보통 짝사랑이라면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향적 감정을 가진 것을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려내곤 한다. 그렇다면 이 감정의 다른 모습은 어떨까?



   영화에서 카나에는 타카키와 함께 집에 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혼자 말한다. 그녀는 학교가 끝난 후 바다에 가서 파도를 탄 후에도 일부러 언니의 차를 타고 학교에 돌아와 타카키를 기다린다. 우연인 것처럼 소리 없이 나타나 인사하고 집에 같이 간다. 타카키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음료를 고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카나에를 보고 “카나에는 항상 굉장히 신중하네”라고 말한다. 너무도 다정하게. 이처럼 카나에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을 선택했고 직접 만들어내는 용기를 가진 대단한 소녀다.



   두 사람의 결말은 서로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간다. 타카키는 3부에서도 여전히 첫사랑인 아카리를 그리워하고, 카나에의 이야기는 2부에서 끝난다. 카나에는 분명 수많은 고뇌의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타카키에게 결국 마음을 말하지 않기로 한 건 그를 배려했거나 그녀가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그 마음을 알고 있으니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자신을 위한 선택이자 용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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