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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Jan 19. 2023

뭐 그렇게 대단한 재능이라고

   나는 내 세상 속에서 참 특별했다. 내 머릿속에는 한 대의 피아노가 존재했고, 주변에 들려오는 소리를 모두 피아노로 똑같이 칠 수 있었다. 냉장고처럼 생긴 핸드폰의 버튼을 누를 때 들리는 소리의 모든 음정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은 그게 절대음감이라고 했다. 한 살 어린 내 동생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아,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이구나. 



   그게 뭐 그렇게 특별한 재능이라고.

   대학 입학을 1년 앞두고 문득 내가 가진 능력을 그냥 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살에 급하게 형식에 맞춰진 곡을 쓰고 피아노를 눈 감고도 정확히 칠 수 있을 만큼 연습했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절대음감이 희소한 재능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오래 공부해 날고 기는 학생들 사이에서 남보다 낫지만 성패를 결정짓는 대단한 재능은 아니었다. 대학 생활 1년을 보내고 난 후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더 잘하려는 마음을 포기했다. 물론 절대음감을 요구하는 과목에선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다른 과목들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교수님의 입맛에 맞는 곡을 써야 좋은 점수를 받는 전공 실기 과목은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A를 받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주류가 아닌 스타일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어려웠다. 



   재능과 인정에 얽매여있던 내 20대는 3분의 2가 음악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연주자와 함께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역할로 다 써버렸다. 나 스스로를 갈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일을 하며 좋은 평판을 얻었다. 이전과 너무 다른 나의 30대는 예술과 관련 없는 일상을 꾸려가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막고 있진 않다. 더 이상 곡은 쓰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원하는 글만 쓰는 사람이고, 이제는 이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 때가 되었다. 



   이제는 음악을 들어도 작곡가가 살아온 시대와 악곡의 형식, 화성 분석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모티브로 일상에서 어떤 변주를 만들었을까, 내 귀에만 유독 더 거슬리는 불협화음은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자극했을까? 정답 없는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나는 나만의 답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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