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다고 인연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이번 설엔 아빠의 4남매가 작은 고모의 가게에서 모였다. 다른 지역에 사는 큰 고모는 오지 못했지만 아빠와 삼촌, 작은 고모와 가족들은 오랜만에 만나 상기된 얼굴이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가 잠들어 있는 추모관으로 향했다. 연휴라 많은 사람들이 납골당을 찾아 그들의 소중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할머니의 유골함 앞에서 할머니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웃으면서 이야기했고, 나는 몰래 무리를 빠져나왔다.
두 달 전, 2018년에 다녔던 직장의 한 팀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분이었다. 당시 나는 다른 지역에 있어 장례식장을 방문하진 못했지만 장지가 우리 할머니와 같은 곳이라 할머니에게 가면 꼭 찾아뵙겠다 다짐하고 마음으로만 애도를 보냈다. 할머니가 잠든 추모관은 한 층이 기독교, 천주교인을 위한 곳이었다. 그 팀장님은 한 교회의 '집사님'이었다. 가족들이 할머니 유골함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마 이 층에 있을 것 같은 팀장님을 찾았다.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눈을 굴려가며 샅샅이 뒤졌지만 팀장님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인파에 가려 확인할 수 없는 유골함도 있었고, 내가 찾지 못한 탓도 있을 터였다.
2018년에 다녔던 그곳은, 긴 시간을 다닐 수 없었던 회사지만 같은 팀이 아님에도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팀장님은 심각한 당뇨로 이미 발을 잃은 상태였고, 회사에 자주 출근할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팀장님은 아내와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고, 회사도 딱한 사정을 알기에 내치지 않고 그의 빛이 사그라들 때까지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해줬다. 물론 회사의 이런 결정에 대해 뒷말이 무수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내가 퇴사하던 날에도 나는 그 팀장님을 만나지 못했다. 팀장님의 건강 때문에 출근이 불규칙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팀장님을 만나면 그는 새카매진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며 나를 반겨주었다. 부고를 전했던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하얀 얼굴로 밝게 웃는 표정이었다. 직접적으로 접점이 있던 사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여전히 내 기억에 있다.
나는 그 추모관의 3층의 인파가 없는 한 구석에서 조용히 그의 애도를 위한 기도를 했다. 오늘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저희 할머니랑 같은 곳에 계시니까 저희 신 권사님도 잘 챙겨주시고요. 이젠 아프지 않은 곳에 계신 거죠? 안녕히 계세요. 다음번엔 꼭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