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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16. 2023

나를 무너뜨린 그녀의 메시지

   이전에 썼던 '청첩장을 받지 않은 결혼식에 축의금을 보냈다'는 글의 주인공인 A는 여전히 내 지인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두루 친한 그녀와 달리,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입을 떼지 않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사람들이 가득한 자리일수록 더 눈과 머리를 굴리며 내가 치고 들어갈 타이밍을 찾는다. 근데 그게 좀처럼 오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않으면, 자기 얘기만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드러내긴 쉽지 않다. 



   어느 평일의 오후, 나는 A로부터 잘 지내냐는 안부 문자를 받았다. 작년 12월, 우리 집에 A를 초대한 이후 처음 받는 연락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처음 방탈출 카페에 가 볼 거고, 저녁에는 마카롱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올 거라고 내 일정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계속할 에너지가 있는 건 좋은 거라고 했다. 최근 다녀온 전시회를 이야기하며 꼭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나는 반응을 표시하는 버튼만 누르고 생전 처음 가보는 방탈출 카페로 향했다. 나 혼자인데도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재미있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물었을 때 방탈출 해봤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다음 행선지를 향해 지하철을 타고 벽에 기댔을 무렵 A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가끔은 보람이가 '더 배우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생각을 해. 늘 내가 모자란 것 같고 부족한 것 같아서 배워야 하는데 안 가르쳐주고, 어디서 배워야 할지 모르겠고, 계속 부족한 것 같고. 뭘 더 배우고 자격이 있어야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 늘 걱정하는 것 같아. 근데 책임의 범위를 넓히면서 해나가다 보면 그 시행착오가 온전히 나의 태도와 역량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마 너에게 그런 경험들이 조금 있을 거야. 나도 그렇게 배우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냥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 마음은 늘 텅 비었다고 생각했는데, 텅 빈 마음도 무너질 수 있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이 없어서 불안하고, 고유한 개인으로 서지도 못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없이 언제나 칼을 품고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쳐내며 혼자서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썼다. 궁극적으로 내 존재의 불안까지, 감싸 안기엔 너무 버거운 불안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다. A는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나는 A와 같이 살던 때에도 항상 책을 읽고 공부했다. 그게 좋아서 그랬던 건 절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안 되고 불안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점점 내 안으로 빠져들어가 '내가 부족해서'라는 결론을 마주하고 그걸 채우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 결과로 학사학위가 3개나 있는 그저 특이하기만 한 인간이 되고 말았지만. A는 나와 달리 번듯한 직장도 있고, 언제나 그녀의 편인 남편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 같은 불안한 존재에게 내어줄 마음이 있다는 게 대단하고 미안했다. 나도 그녀처럼 타인에게 잠시라도 마음을 나눠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내 존재가 점점 작아지는 걸 느낀다. 당장 내일도 부정적인 생각들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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