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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19. 2023

혼자라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

1인 가구로 살면서 도움이 필요했던, 힘들었던 날 

   새 집으로 이사하던 날, 2020년 3월 7일, 나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그전에 살던 셰어하우스의 퇴거는 하루 뒤인 3월 8일이었지만 미리 짐을 다 챙겨놓고 3월 7일 아침부터 두 집을 오가며 짐을 옮기고 청소를 했다. 내 손으로 처음 샀던 청소 도구들, 입주 청소비를 냈지만 여전히 자질구레하게 손 봐야 할 것들이 있었다. 아무도 산 적 없는 새 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주인이 되었다. 이런 게 새로운 시작이구나.


   셰어하우스에 살 땐 짐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짐이 많으면 둘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살던 집에서 내 방과 계단 사이에 짐을 쌓아둔 사람도 있었다. 원래 그 공간에는 청소도구를 두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입주하면서 짐가방을 3개 정도 쌓아놔서 청소 도구를 꺼낼 때마다 짐가방이 쓰러질까 봐 신경 쓰였다. 왜 내가 그런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거지?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짜증 나네. 본인은 곧 퇴거할 거라며 늘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결국 그 친구는 내가 나간 후에도 몇 달 동안 그 짐을 치우지 않았다. 


   아무튼 아무것도 없던 휑한 방에 나는 얼마 없는 옷들을 전부 신발장에 넣었지만 롱패딩이나 원피스는 쉽게 구겨질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옷장을 넣기엔 방이 너무 좁았고, 할 수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행거밖에 없었다. 대구에서 차를 가지고 달려온 부모님과 함께 근처 대형마트에서 2단짜리 행거를 구매하고 아빠가 조립과 설치를 도와주셨다. 롱패딩과 원피스는 옷걸이에 걸려 본연의 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몇 달 뒤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게 되면서 에어컨이 들어갈 자리에 있던 행거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 과정에서 5평 남짓한 방은 전면적인 가구 재배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봐야 가구라고 할 건 책상, 의자 정도였지만 혼자서 하려니 책상 위의 짐을 전부 치워야 옮길 수 있었고 손이 가는 일이 많았다.


   특히나 행거를 옮길 때 걸려 있던 옷들을 다 꺼낸 다음 행거의 조립을 풀어야 하는데 힘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어려웠다. 사실 그때 처음 혼자 살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당장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지금까지 난 뭐 했지? 이럴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냥 가까운 사람 자체가 아예 없으니까.. 바닥이 내뿜는 한기가 발가락을 타고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다. 춥고 공허하네. 



   그 뒤로도 가끔씩 행거를 다시 해체하고 조립해야 할 상황이 종종 생겼다. 이유 없이 쓰러져서 나를 당황시키기도 하고, 다시 조립하고 설치하느라 또 옷을 다 꺼내고 다시 걸고 하는 것들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온 나에게는 더욱 힘 빠지는 일이었다. 생각은 조금 더 나아가서 나를 계속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중력의 힘을 거스르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데.



   혼자라는 자유는 좋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에 자주 부딪치게 되는 것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면 '어차피 다른 사람도 다 그런데 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도와줄 친구가 있거나 쉽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니 또 '나는 왜, 세상은 왜 나한테만 가혹하지'라는 억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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