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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20. 2023

니 뭐 하는 사람이고?

우리 할머니는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몰랐지만, 그저 사랑했다 

“니 와 벌써 오노?”


“일 끝났으니까 왔지!”


“어디서 일하나? 니 뭐 하는 사람이고?”


“할머니, 내 ○○○○에서 일한다.”


“거기서 뭐 하나? 청소하나?”


“……어”     



  우리 할머니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만들고 있다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눈높이에서 납득시키기 위해 계속 설명하다 정말로 목이 아팠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 그냥 재밌어 보이는 일이면 한다. 오늘의 내가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이라면 더욱 좋다. 서울의 밤하늘만큼 내 미래는 깜깜하고, 별 한 점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단점을 가진 회사는 다시 가지 않고, 매년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단 하나가 될 때까지 시도한다. 그런 생활을 지속해 온 지 약 8년이 되었고, 불안정, 불확실, 불합격 등 뜨거운 부정어는 내 친구가 되었다. 내 직업이, 직장이 수식어가 되는 세상에서는 아직 어울리는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매년 다른 사람이 된다. 이름 석 자는 변하지 않지만 회사가 다르고, 생활권도 달라지고, 하는 일도 판이하다. 한 해에 두 번 이상 바뀔 때도 있다. 



  2000년대 후반,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뒤늦게 시작한 작곡 입시 공부에 밤마다 울면서 후회하고 있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던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피아노 소리에 공백이 생기면 득달같이 튀어나와 따가운 잔소리를 했다. 여기에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네가 한다고 했으면 열심히 해야지. 마음속으로는 눈물이 멈출 새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 세대주인 할머니는 내게 잔소리도, 어떤 비난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밤늦게까지 방에서 불을 밝히는 손녀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한 해 뒤, 나는 무사히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가끔 들리는 컴퓨터 사보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소리만 듣고도 부모님은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훈수 두기 바빴다.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생각이 없는데. 우리 할머니는 내가 다니는 학교는 알고 있지만, 내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전혀 몰랐다. 할머니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 할머니와 한집에 사는 것은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할머니는 내 피아노 소리도, 바로 옆에서 울리는 가장 큰 볼륨의 핸드폰 벨 소리도 듣지 못한다. 내 귀에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할머니 첫째 딸의 엄청난 코골이에도 깨지 않고 깊이 잔다. 아예 아무것도 못 듣는 건 아니지만, 보청기는 무용지물이고 할머니와 대화하려면 단전에서부터 기를 끌어모아 목으로 토해내야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손녀가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른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눈빛이 두려워 바깥에서는 할머니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할머니는 평소 좋아하던 복숭아 통조림을 건넨다. 두 개 샀다며. 들리지 않아서 더 선명히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가끔 연주를 위해 내가 편곡한 악보를 보낼 때, 나는 사람들에게 예술가로 나를 소개한다. 사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이 애매한 재능을 눈치챌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간이 없는 예술계에서 자기만의 위치를 갖는 건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다. 나에겐 예술가의 인생도, 직장인의 삶도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언제 꺼질지 모르고 타고만 있다. 물론 당장 불이 꺼져도 걱정은 없다. 불 꺼진 나도 누군가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믿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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