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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22. 2023

잘하는 건 '얼굴 들이밀기'

없는 용기를 쥐어 짜내서라도

   나는 대체로 아주 비사교적이고 폐쇄적인 인간이다. 쉬는 날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굳건하다. 꼭 필요할 때 말고는 누군가와 연락하는 것도 반갑지 않다. 생일 선물은 안 주고 안 받는다. 누군가의 생일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때에 따라 가끔 외향적인 사람이 된다. 여기서 외향적인 사람의 정의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싸'가 아니라 '인싸가 되고 싶은 아싸'로 생각하면 된다. 



   누구라도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큰 리액션이나 엄청난 말솜씨를 가진 건 아니지만 내가 잘하는 건 일단 얼굴부터 들이미는 것이다. 얼굴을 들이민다고 하니 조금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하게 되는데 뭐라 달리 정의할 말이 없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리여도 일단 참석한다. 직업도 직장도 없으니 한국 사회에서 나를 소개할 말이 없지만, 그렇다면 이름과 얼굴이라도 알린다. 귀차니즘을 이기고 사람들을 만난다. 연락처를 교환하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일단 얼굴이 익숙해지게 한다.



   초면에 마음을 열지 못하더라도 계속 만나고 얼굴을 익히면 익숙하게 느끼게 된다. 3명 이상이 모인 자리에선 거의 말을 꺼내지 않지만, 열심히 듣고 있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여러 시간을 보내면 서로 어떤 사람인지 더 쉽게 알 수 있다. 나에게 스며들 기회를 만든다.


 

   나는 나 자신을 오래 두고 볼수록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타이틀이 없으니 단기간에 보여줄 수 있는 건 많지 않고 가치를 만드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조금만 어렸으면 좋겠다는 후회도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여전히 대구에 살고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니 안 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나를 소개할 말이 없을 때, 뭐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할 때, 종종 절망스럽지만 체념한다. 수식어가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모두 내려놓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닌다. 자주 만나며 내 얼굴을 익히게 하고 대화를 나누며 또 다른 기회와 연결될 고리를 만든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전문 분야를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자기 계발 및 구직활동에 최선을 다한다. 매일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싸우지만, 얼굴을 들이미는 일은 지속적으로, 지치지 않고 지속한다. 내 이름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은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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