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보람 Apr 19. 2023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습니다

2023년 4월에서야 코로나에 처음 걸린 사람

   2021년 1월 코로나 생활치료센터에서 방호복을 입고 확진자를 직접 대하던 때에도 감염되지 않았던 코로나가 3년 만에 나에게 왔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요즘 서울의 1일 확진자는 약 15,000명 규모다. 서울 시민이 천 만이니 그중에서도 선택받은 15,000명 중 하나라니 엄청난 확률이다. 격리가 끝나면 로또를 사러 가야 하나?



4월 17일 새벽(코로나 확진 전날)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잠시 깼는데 목이 칼칼했다. 입을 벌리고 잔 건가? 싶었지만 그냥 물 한 컵 마시고 다시 잠들었다. 그날 아침을 전혀 예상 못한 채...



4월 17일 아침

   너무너무 추워서 깼다. 목과 얼굴이 뜨거웠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는데, 감기인가 싶어 감기 증상을 찾아보니 발열은 드물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럼 독감인가? 12살, 29살 때 독감에 걸린 적 있었지만 그땐 정말 눈앞이 흐려지는 고열에 죽는 줄 알았다. 이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코로나일까? 불안이 엄습해 온다. 예전에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이 생기면 먹으려고 사 뒀던 타이레놀이 생각나서 한 알을 먹었다. 타이레놀의 약효 덕분인지 한 시간 뒤 열이 내리고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점심

   점심엔 식사를 차려 먹어야 하는데 식사를 차릴 기운도 없었다. 열은 조금 내렸나 싶을 때 다시 올라갔다. 체온계가 없지만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살 기운까지 겹쳐 허리가 너무 아파서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식사는 해야 하지만 배달앱을 지운 지 3년이나 됐는데 다시 깔고 싶진 않았다. 한 죽 프랜차이즈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주문이 가능했다. 입맛이 다 떨어졌지만 꾸역꾸역 음식을 먹었다. 다시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니 억지로 식사를 했다. 코로나가 아닐까 생각은 했지만 자가키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집 지하 1층의 편의점에서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이제 10분을 걸어 약국에 가야 하는데 서 있기도 힘든 상황에 외출은 더더욱 언감생심이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계속 열이 나서 타이레놀을 3알이나 먹었다. 힘들지만 독감에 걸렸을 때 만큼 아프진 않았다.



저녁

   저녁에 오늘 하루 먹은 것들의 설거지를 몰아서 했다. 평소엔 설거지를 그때 그때 쌓이지 않게 처리했지만 제대로 서 있을 수없는 상황이었다. 계속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릇에 대충 세제를 발라놓고 헹군 다음 쓰러질 듯 잠에 들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야지.



4월 18일(확진 당일)


   새벽에 추워서 깼다.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4월에 한 번도 켜지 않았던 보일러를 틀고, 극세사 이불을 둘둘 감은 채로 잠들었다. 아침에 꼭 병원에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손바닥 만한 빵을 하나 먹는 데도 1시간이 걸렸다. 조금 먹다 내려놓고, 또 한 입 먹다가 내려놨다. 예전 같으면 한 입에 다 먹었을 테지만 달고 맛있는 빵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병원에 들렀다. 코로나와 독감 동시 검사를 요청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코를 두번이나 찔러서 아팠지만 눈물 찔끔 흘리며 참아냈다. 오늘은 열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체온을 재니 37.1도였다. 신속항원검사 후 1분 정도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이 코로나라고 했다. 지금 내가 내뿜고 있는 바이러스의 양이 많은가보다. 이렇게나 빨리 두 줄이 뜨다니. 증상을 얘기하고 처방전을 받았다. 보건소에서 곧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전화라도 오는 줄 알았더니 이름과 격리기간이 적힌 문자 하나가 전부였다. 약국에 들러 처방받은 약을 가지고 집으로 갔다. 약 봉지를 보고 약의 구성을 살펴보니 완전 종합감기약이었다.



4월 19일(확진 2일 차)


   새벽에 또 춥고 열이 나서 깼다. 방귀를 뀌었는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후각이 사라진 것 같다. 식사를 할 때 맛이 느껴지는 걸 보니 미각은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창 밖엔 날씨가 정말 따뜻하고 좋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창 밖으로 흘러가는 시간만 구경했다. 지금은 자고, 먹고, 화장실 가고 이 3가지만 반복하고 있다. 서울 최고 기온이 27도인 날인데도 몰려오는 오한에 다시 보일러를 켰다. 오늘은 중간에 깨지 않고 잠들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서 와, 출사는 처음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