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금요일

by 겨울늑대

김심야는 동태 같은 눈깔로 멍하니 TV에서 상영되는 '서프라이즈: 13일의 금요일'을 시청한다. 그는 사람들이 저런 조작된 미신 따위 믿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1.

'1, 1, 2, 3, 5, 8, ?'

8 다음에 올 숫자를 예상할 수 있나요.

정답은 13입니다. 위와 같은 수의 나열을 피보나치수열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위와 같이 첫 두 항이 1이고, 세 번째 항부터는 바로 앞 두 항의 합이 되는 수열입니다.


2.

2029년 3월 12일 일요일 오후 1시, 철야일보의 사무국장인 김심야는 아직 술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 그의 방 안 정적을 무너뜨리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왔다. 김심야의 휴대전화는 그의 베개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고, 휴대전화는 전화벨을 울림과 동시에 그의 어두운 방 천장을 환하게 비추게 되었는데, 천장에는 김심야처럼 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온갖 곤충들이 갑작스러운 빛과 소음에 불평이라도 하듯 허공 속을 날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김심야는 갑작스러운 소동을 불러일으킨 휴대전화를, 아직 어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안구를 최대한 이용하여 노려보았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저장이 되어 있지 않은 번호가 떠 있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끊기지 않고 울부짖는 전화벨에 지쳐 결국 휴대전화를 들어 오른뺨에 갖다 댄다.

김심야는 전화기 속 상대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김심야의 풀린 눈에 점차 힘이 들어가더니 그는 오른 턱과 오른 어깨 사이에 휴대전화를 끼운 채 분주하게 좁은 방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치 이등병이 기상하여 군복을 갈아입듯이 순식간에 양복으로 환복하더니 차 키를 움켜쥐고 좁고 어두운 방문을 급하게 나섰다.

그날 저녁, TV를 비롯한 온갖 매스컴이 같은 내용의 보도를 조금이라도 먼저 내보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그날 벌어진 참혹한 현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산광역시의 유명한 재래시장에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 시신은 마치 짐승에게 물어뜯긴 듯 살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신의 5번 갈비뼈 부분에 하얀 명함이 테이프에 의지해 펄럭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탈세를 일삼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 연예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명함 뒷면에 빨간 글씨로 '나태(Pigritia)'라고 적혀있었다.


3.

하루 뒤인 3월 13일, 월요일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오후 1시였다. 철야일보 사무국장 김심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제와 다른 전화번호이지만, 어제와 같이 저장이 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전화기 속 상대방의 목소리는 변조된 기계음이었으며, 이미 녹음하여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전화기 속 음성은 시체를 숨겨 둔 위치를 반복적으로 밝힐 뿐이었다. 기계 음성에 따르면 이번 시체는 대구광역시 수성못의 저수지 수면 근처이다. 그날 저녁 수성못의 저수지에 은퇴한 국회의원의 시신이 한 구 떠올랐다. 고인의 정체는 여성 편력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온 이 모 씨였다. 고인이 입고 있던 셔츠의 깃에 붉은 글씨로 '질투(Invidia)'라고 적혀 있었다.


5.

3월 15일 화요일, 인천에서 시체 한 구 발견, '분노(Ira)'

3월 18일 목요일, 대전에서 시체 한 구 발견, '색욕(Luxuria)'

3월 23일 일요일, 울산에서 시체 한 구 발견, '인색(Avaritia)'

3월 31일 금요일, 광주에서 시체 한 구 발견, '탐욕(Gula)'


8.

지금까지 총 6번의 시체 예고 전화를 받았다. 항상 오후 1시(13시)에 전화가 왔으며, 시체는 각각 한국의 6대 광역시에서 발견되었다.

시체 주위에 항상 빨간 글씨로 표식이 남겨져 왔는데, 그것의 정체는 7대 죄악 중 6가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남은 죄악은 '교만(Superbia)'이다.

시체의 예고 주기는 피보나치수열에 따랐다. 처음과 두 번째의 간격이 하루,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간격이 이틀, 그 뒤로 3일, 5일, 8일을 주기로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예고는 광주 사건으로부터 13일이 지난 2029년 4월 13일 오후 1시가 되어야 한다.


13.

오늘은 2029년 4월 13일 금요일이며,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14분이다. 이미 오후 1시가 한참 지났는데 여태 예고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시체 예고는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13시 정각에 이루어져 왔다. 오늘은 왜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이며, 시체는 어디에서 언제 발견되는 것이지?

지난 한 달간 대한민국의 범죄율은 현저히 떨어졌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지표를 마음 편히 보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언론인들이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범죄 행위를 옹호했다며 대중의 뭇매를 맞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스컴에서 뚜렷한 지표를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대중들은 범죄율이 떨어졌다는 것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사석에서는 의문의 살인자에 대한 찬반의 논쟁이 빈번히 벌어지곤 했는데, 처음에는 팽팽했던 양측의 줄다리기가 점차 찬성 측으로 기울더니, 결국 살인자에 대해 옹호하고, 더 나아가 그를 추앙하고 하나의 신앙적 존재로 받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그를 숨겨진 예수의 13번째 제자일 것이라고 칭했으며, 이로써 13일의 금요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저주를 그가 깨부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철야일보는 지금껏 6번의 살인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보도할 수 있었고, 그 배경에는 오후 1시에 늘 울리던 김심야의 휴대전화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 김심야의 휴대전화에는 아무런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철야일보 임원진들은 대대적인 회의에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부터 시작된 회의는 해가 질 때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지금까지의 규칙성을 고려해 서울 임의의 지역에 시체가 발견될 것이라고 거짓 보도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거짓 보도를 결정 내리는 가장 큰 요인은 반드시 서울 어딘가에서 시체가 발견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었다.

회의가 끝나는 즉시 철야일보는 잠시 후 광화문 부근에서 7번째 시체가 발견될 것이라는 보도를 하였다. 철야일보에서 7번째 시체에 대해 보도하자 다른 언론사들도 잇따라 비슷한 보도를 쏟아내었다. 김심야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띠어졌는데 이는 자신이 쓴 기사 뒤꽁무니를 열심히 쫓는 언론사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때 김심야의 휴대전화에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놈이다.

"철야일보 사무국장 김심야, 왜 당신의 전화기를 여태 경찰 측에 넘기지 않았지? 그랬다면 7번째 살인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지금까지 당신에게 간 6번의 전화의 발신 장소가 모두 같은 곳이었어. 물론 앞선 6번의 살인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야. 내가 왜 당신을 선택한 것일까? 아아, 그렇지. 그런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겠군요. 내 전화를 받자마자 머릿속이 온통 시체에 대하여 특종 기사를 쓸 생각뿐이었을 테니. 당신 생각에 철야일보가 대한민국의 언론의 중심부에 속한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너희 회사는 보잘것없는 중소기업일 뿐이야. 그런 보잘것없는 회사의 사무국장인 당신에게 제보를 한 이유가 뭘까?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너희 기업의 올해 1분기 매출이 갑자기 배로 뛰어올랐으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겠지. 7번째 희생자가 누구냐고? 그걸 내가 알려줄 리가 있나. 똑딱똑딱! 시침은 계속해서 움직여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군. 장소라도 알려달라고? 자네 회사의 특종 보도와 일치하네. 서울 광화문 부근이야."


13일의 금요일 오후 9시, 광화문 일대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mbs, kbc과 같은 대형 공중파 언론사들, 의문의 살인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 잠입한 형사들, 예수의 숨겨진 13번째 제자를 따르는 추종자들, 이 외에도 딱히 무엇이라고 부류 짓기 힘든 불특정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안 그래도 인구 밀집도가 높은 광화문 일대인데 오늘의 광화문은 중국의 인해전술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극도로 높은 인구 밀집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 여파로 주위 도로들이 정체되었으며, 살인자의 추종자들로 추정되는 자들이 정체된 차량 위를 뛰어다녀 안 그래도 번잡한 광화문 일대를 더욱 난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때 최루탄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것들이 하늘에서 무분별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를 추종자들을 진압하기 위한 최루탄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놈'이 준비한 생화학 무기였다. 이것은 그놈이 전 재산을 털어 외국 브로커를 통해 밀수한 것으로, 실제로 중동의 전쟁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이 무기의 명칭은 'sx-13'으로 조금만 흡입해도 13분 안에 해독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사망에 이르기 전 13분간 아무런 전조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sx-13이 전쟁에서 처음 실사용되었을 때, 너무나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이 무기는 곧바로 세계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협의가 되었는데, 이렇게 더 이상 전쟁에 사용될 수 없게 된 sx-13은 브로커를 통해 개인에게 고가로 유통되어 온 것이다.


김심야는 동태 같은 눈깔로 멍하니 TV에서 상영되는 '철야일보: 13일의 금요일의 비극'을 시청한다.

'2029년 4월 13일 금요일 밤,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김심야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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