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

by 겨울늑대

내 앞에서 울지 마라. 그것은 함무라비 법전에 대한 모욕이다. 차라리 날 비웃어라.

1.

나의 두 발바닥과 땅바닥이 만나는 순간이 어색하다.

신발 밑창에 천천히 굳어지는 강력한 접착제가 있다거나, 밑창 속 고무가 엄청난 자성을 가져 지층 속으로 끊임없이 파고 드려는 듯이 말이다. 나의 온 신경은 자연스럽게 나의 두 발바닥이 느끼는 오묘한 감각으로 향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앞두고 고혹한 시선을 휘감는 젊은 남녀 한 쌍처럼, 멀어져 가는 것만 같은 이 감각, 이것을 하나의 착시 현상으로써 정의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떠한 형이상학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추궁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를 헤매는 눈먼 장님과 같아서 절망감은 계속해서 깊어졌고, 그러는 사이에 두 발이 남은 신체 부위에게 보내는 미약한 전기 신호는 점점 약해져만 갔다. 머지않아 이 미약한 전기 신호를 느끼기란 불가능함이 확실하며,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정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내는 스핑크스와도 같은 미로를 탈출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2.

처음으로 내 통제로부터 벗어난 신체 부위는 두 눈이다. 이제는 시각이란 것이 내가 가진 고유한 감각이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 시각을 잃는다는 것은 잃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두 팔을 휘저으며, 남은 감각기관에 온몸을 의지하며 천천히 앞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것 따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각을 잃는다는 것은 어둠보다도 더 짙고, 더욱 무거우며, 동시에 한없이 가볍고도, 얕은 곳을 헤매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무의 상태이자, 허무이며, 공허이다.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팔꿈치로 사물을 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팔꿈치로 세상을 못 본다는 것에 억울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나 같은 경우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두 눈이 팔꿈치로써 전락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억울하지가 않다.


3.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인간이 세운 모든 추상적인 체계란 아무리 곱게 쌓아 올려도 가벼운 항변 따위에 쉽게 흔들리는 법이며 굳건히 기지를 피우려 할수록 대중들은 이를 악덕하고 폐습적인 것으로 여겨 효력을 잃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함무라비 법전의 보복주의는 인간이 내보인 추상물 중 가장 합리적이며 보편적이고 공평한, 일종의 완성체에 가까운 것이다.

2년 전 나는 주위 사람들을 눈멀게 한 죄로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나무에 기대어져, 나무를 감싸는 덩굴 식물들을 지지하기 위한 버팀목 역할을 시키기라도 하듯, 다소 누렇고 다소 거친 촉감을 가진 밧줄에 칭칭 감겨진 채로 수개월 동안 방치되었다. 물론 내가 죽지 않도록 위원회 사람 한 명과 의사 한 명이 주기적으로 나를 점검하여 건강 상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였고, 이 친절한 의료 행위가 끝날 때쯤에 어린 소년이 소풍 바구니에 각종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를 가져와 내가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 가지 빼먹은 이야기가 있어서 덧붙이자면, 의료 행위와 식사 시간 사이에 나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누군가 나의 두 눈두덩에 끈적끈적한 액체를 발라주었는데, 그것의 정체는 온갖 잡곡들을 빻아서 풀과 섞은 것으로 특히 까마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까마귀가 주행성 동물이기에 나의 두 눈이 부리에 의해 깊게 파헤쳐지는 순간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나를 불쌍히 여겨 위로라도 하려는 듯 행동하였다. 보복주의에 입각한 체벌이 극악무도하고 악랄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눈을 찌푸리고 비명을 질러대기까지 하는 바람에 나는 두 눈이 파헤쳐지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는데, 그것은 이 정당하고도 합법적인 체벌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한 반응에 의한 것이자, 2년 전 내가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죄질이 나쁘며 반인류적인 것임을 뒤늦게 깨달음으로써 오는 무거운 죄책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무 기둥에 온몸이 묶인 지 이틀 정도가 지나자 까마귀가 나의 시신경을 끊어버린 것인지, 더 이상은 나를 측은하게 쳐다보는 행인들의 시선을 인지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아마 나를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소리의 빈도도 점점 뜸해지더니 그 공백은 자연스럽게 나를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웃음 소리로 바뀌어 나에게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두 팔과 다리를 고정하던 밧줄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무를 감싸는 덩굴들이 잇게 되어, 나는 애초에 나무 넝쿨을 지지하기 위해 태어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사내인 것처럼 덩굴들에게 나의 온몸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덩굴들이 온몸을 뒤덮음과 동시에 이들이 내 몸을 옥죄는 강도가 점차 강해졌는데, 이것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빠져 버린 근육으로 인해 내가 더 이상 덩굴의 옥죄임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덩굴들이 나의 나쁜 죄질에 대하여 알고 벌을 주기 위해 점점 더 강하게 나의 몸을 옥죄는 것인지, 아니면 나약한 나의 정신이 나쁜 죄악을 저지른 것에 대해 반성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저 나약함에 안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나의 착오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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