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거, 사람 서류보다 고양이 서류가 더 많고 복잡해!”
디스코(시스코와 데이지)가 나와 남편을 가족으로 선택해 준 이후,
우리의 일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처음 고양이 사료와 간식, 고양이 화장실 + 화장실 모래, 캣타워 및 각종 고양이 장난감 등
고양이 용품 구매를 시작으로,
우리의 장보기 리스트에는 언제나 고양이 관련 상품들이 중요한 항목이 되었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집안 거덜 났을 거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고양이 집사를 꿈만 꾸고 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식집사라고 부르며 식물 기르기에 나름 열정적이었다.
그러다 디스코가 우리 집에 오기로 결정되자마자
알로에, 몬스테라 등 고양이에게 해로울 수 있는 식물들을
직장 동료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었다.
정성으로 길러오던 식물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체온을 나눌 새 식구를 맞으며 모두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선,
식물들과의 추억을 예쁘게 간직하고 그들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북미에서는 핼러윈(10월 31일)이 끝나자마자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피 핼러윈’은 나와 남편에게 그다지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은 달랐다.
연말을 자축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겐 꽤 중요한 한 해의 행사였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11월 말이나 12월 초부터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곤 했다.
하지만 시스코와 데이지가 우리 집에 온 작년은 달라져야 했다.
과거 크리스마스트리를 놓았던 자리에
시스코와 데이지의 캣타워가 세워졌는데,
트리 장식을 위해 아이들의 쉼터를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트리를 집안 다른 곳에 두자니 마땅한 자리도 없었을뿐더러,
혹시나 아이들이 트리 조각을 삼키거나
전구 줄에 감기는 사고라도 날까 싶은 노파심이 생겼다.
결국 우리 부부는 과감하게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포기하고,
대신 호두까기 인형과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조명으로
조촐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로 했다.
또한 1박을 넘기는 여행을 하게 될 땐
반드시 고양이 시터를 먼저 구해 놓은 후에 계획을 짰다.
다행히 이웃 중에 본인도 고양이를 키우면서
다른 고양이들도 정성스럽게 잘 돌봐주는 분이 계셔서,
우리는 고양이들 걱정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고양이들을 집에 두고 다녀온 첫 여행에서는 그 녀석들이 너무 걱정되기도 했지만,
고양이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주는 이웃 덕분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었고,
좋은 이웃이 있음에 감사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디스코와 함께 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집사’라는 호칭 대신 디스코의 ‘엄마’, ‘아빠’를 자칭하며,
시스코는 우리 아들, 데이지는 우리 딸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엄마, 아빠, 큰아들, 작은딸이 있는 ‘가족’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아빠의 이직’, 그것도 미국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싱가포르로의 이주라는
크나큰 변화를 맞게 됐다.
사람들은 “고양이는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지만,
우리 부부에겐 “당연히 같이 가지!"라는 것 외에 다른 답안은 없었다.
하나씩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초보 고양이 엄마 아빠에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다행히 우리 곁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자료 왕국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다면 얼마나 막막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문명에 감사를!
남편이 싱가포르 ‘동물 건강 관리/진료 기관 Animal & Veterinary Service’ 웹 사이트에서
싱가포르로 개와 고양이를 데려오는 단계별 안내 자료를 찾아 나와 공유했다.
훗날 이 서식을 본 남편은 “정말 악몽 같았어!”라고 말했다.
1단계부터 12단계까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그래도 중요한 정보니 꼼꼼하게 보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러다 중간중간 난관에 부딪히며 우리는
더 미리 대비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일단,
1-2 단계: 천만다행으로 미국은 광견병 위험 국가로 분류되지 않았고,
시스코와 데이지 역시 싱가포르 입국이 가능한 품종이었으며 나이도 적당했다.
하지만 백신을 맞았다는 것을 증명할 마이크로칩이 아이들 몸에 없었다.
디스코가 우리 집에 오기 전 병원 기록을 보면,
기생충 백신을 비롯해
이름도 생소한 고양이 칼리시바이러스, 고양이 허피스바이러스,
그리고 범백혈구 감소증 백신을 이미 다 맞았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칩에 기록이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물 병원에서 마이크로칩을 삽입한 후 이 백신들을 모두 다시 맞아야 했다.
“우리 같이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이날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디스코에게 이 말을 참 많이도 했다.
시스코와 데이지는 영문도 모른 채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었다.
동물 병원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러 간 날이 6월 4일였는데,
그날 우리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됐다.
남편 새 직장 근무 시작이 9월 1일,
계산해 보니 아이들 접종 확인을 승인받고
싱가포르에 입국 가능한 첫날이 9월 2일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시간이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빠듯했다.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내가 시스코와 데이지를 데리고 뒤따라가기로 했다.
세상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강하게 마음먹자고 다짐했다.
“엄마는 강하다!”를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맘먹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평온한 일과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우리 예약한 항공편 한국 거쳐 가는 거 알지?
한국이 동물 격리 면제 국가가 아니라서,
어쩌면 우리 고양이들이 싱가포르 입국 후 30일 격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데이지: "뭐지? 엄마, 아빠 분위기가 이상해."
시스코: "그러게, 무슨 일이지?"
아이들도 우리의 격앙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숨죽여 주위를 맴돌았다.
디스코를 격리 시설에 30일간이나 있게 할 수는 없었다.
격리 면제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일단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격리 면제의 방법이 있는지 문의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업무일 기준 5일 내로 답을 준다고 했다.
애가 탔지만, 당시엔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사이 고양이/개 라이선스, 수입 라이선스, 세금 면제 허용증 등을 신청하고,
'동식물 격리 검역 Animal Plant Quarantine' 예약을 시도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참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 무엇도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싱가포르는 자동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동화 때문에 미국에 있는 우리가 접근하는 데엔 제약이 많았다.
예를 들어 정부 해당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싱패스(SingPass)’ 앱을 이용해야 했는데,
핸드폰 OTP (일회용 비밀번호)를 받아야 했다.
문제는 OTP를 받을 수 있는 번호가 싱가포르 번호여야 한다는 것!
“우린 싱가포르 번호가 없는데, 어쩌라는 거지?”
“뭐 이거, 사람 서류보다 고양이 서류가 더 많고 복잡해!”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남편 예비 슈퍼바이저에게 부탁하기도 애매했던 것이,
당시 그분이 유럽 본국에 계셨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며칠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정말 오랜만에 올린 페이스북 근황을 보고,
옛 동료가 본인이 싱가포르에 있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인맥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한동안 소원했던 사이였지만,
옛 동료는 기꺼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싱가포르 사이트에서 그녀의 핸드폰으로 OTP를 보내면,
그녀가 우리에게 바로 문자로 알려주었다.
‘미션임파서블’을 ‘미션파서블'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우리의 이런 노력을 하늘이 가상하게 여겼는지,
며칠 뒤 우리는 희소식을 듣게 됐다.
우리가 가는 여정중 한국을 경유하긴 하지만
24시간 이내이고, 고양이들이 공항 내에만 머물 경우
격리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은 것이다!
"할렐루야! 나미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성모님 감사합니다! 나마스떼!"
이렇게 기쁠 수가!
시련이 없었다면 이런 기쁨도 없었을 테지.
그 희망적 소식을 들은 날, 나와 남편은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9단계, 10단계의 험난한 여정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단잠이었다.
디스코 싱여행기 3화가 곧 이어집니다. 디스코의 여행에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