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함은 다분히 상대적이다. 비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절망과 우울이 코끼리를 뱀이 삼켜서 모자가 된다.
이게 뭐지? 그건 모자야.
코끼리를 삼킨 뱀을 그려놓고, 어린 왕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을 이해할 수 없었다.
1.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정받으려고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다. 노력이 저평가되어,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세상은 그 사람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무엇인가?
환경에 대한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일이 안 되는 일을 2019년에는 무작정 '코로나19'로 답했다. 잘 된다고 하면 누가 와서 두들겨 팰 것 같은 분위기. 나는 단호히 그건 '변명'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반사익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집콕이라는 유행어에 걸맞은 소비성향은 가전제품 판매 대박, 온라인 업체들의 최고의 영업이익을 창출했고, 너도나도 배달업체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모든 것에 대한 가격 폭등은 주식과 부동산에 몰렸다. 가만히 있으면 '벼락 거지'가 되는 분위기였다.
자영업자의 몰락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지만 자영업자가 아닌 사람이 충격이 적었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다. 사회는 먹이사슬처럼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도미도처럼 영향을 준다.
평택의 먹자골목(박애병원 근처)
자영업자뿐 아니라 이에 준하는 모든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은 관공서(국가기관에 직간접 연관성을 지닌 업체)일 것이다.
유래 없이 바쁜 택배는 일이 너무 많아서 택배기사들이 과로로 죽는 일을 화재의 뉴스가 되었다.
텅 빈 거리에서 부의 양극화는 'K'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다.
2. 가난은 힘든 사람을 벼랑으로 세운다.
부의 양극화는 '빈익빈부익부'일 수 밖에 없다. 절대적 복지를 하고 있다고 해도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서민들은 IMF때와 비교하면 그때는 일도 아니라 한다.
지금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성토하는 말이다. 항간에는 '죽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 이 말는 코로나로 죽는 사람보다 굶주려서 죽게 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이다.
3. 굶주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격리'
재수 없으면 병에 걸리지만,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오죽할까. 간만의 차이로 간염 된 사람들은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코로나에 걸리고 난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서 어떤 어려운 치료를 받는지는 사실무근이다. 마치 별나라 얘기처럼. 방송에서는 연일 감염자 수에만.
4. 초라함을 겪는 사람들.
실상 자신이 하던 일에 충실했던 사람들 조차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자괴감 스런 자책을 할 가능성이 있다. 내가 잘 못 살았나?
남들은 놀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듯한데, '난 대체 사업을 해도 이렇게 말아먹는 건가?' 하는 자괴감.
수입이 반토막이 아니라 수입절벽을 겪는다. 어쩌면 절벽에 다리를 건너려 해서 위험스럽게 건너고 있는데 그 다리조차 갑자기 끊어지는. 마치 영화 속에서 다리가 끊어지고 몇 사람은 떨어지고 순간 뭔가를 잡았는데, 끊어진 그 밧줄에 매달린 느낌이랄까.인디아나 존스 수준 정도는 되어야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
5. 세금이 어째서 자꾸 늘어나는 것 같지?
자동차세나 안 내던 세금이 실제로 늘었다. 코로나여도 공무원들은 일하는 섹터도 많을 것이다. 종일 출근하고 아무도 안 오고 자리 지키고 있다가 퇴근한다.
"부러우면 공무원 해라 너도?"
이리 말하면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공무원도 더 바쁜 영역과 덜 바쁜 영역이 있을 테니까.
은근슬쩍 올린 세금은 폭탄이 되고 폭탄이 된 국민은 폭탄을 맞아서 잠재적 채납자가 되고, 채납자는 범죄자가 된다. 그럼 세금은 서민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고 가는 거네. 설마?
그러지 않으려면 놀지 말고, 뭐든 해야지!
그럼 뭘 하지?
"...."
6. 집콕하면 조금씩 우울해지고 우울해지면 정신도 멀쩡할 수 없다.
재앙이나 전쟁에 버금가는 세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능가하는 사망자.
징기스칸도 유럽 대륙의 후퇴가 결국 병균이었다던데, 죽은 시신을 적진에 던져서 세균 전쟁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코로나를 정치에 악용하는 불쾌하고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7. 일이 멈추면 쉬게 되고, 쉬다보면 게으름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휴식에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겁이 나고, 그러므로얼어버린 얼음처럼 화석화(fossilization) 된 그 사람은 자책과 자괴감, 초라함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되고, 그러다가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8. 지금도 잘하고 있거든요.
"김C 표류기"는 히키코모리를 다룬 영화다. 한강에 뛰어내린 김 씨와 그를 우연히 발견한 한 은둔형 외톨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을 간다지만 가만히 있으면 꼴찌가 된다. 요즘처럼 혼족이 많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부광고는 함께 사는 종족( family) 조차 뭐라고 할 것 같다. 같이 산다고?
해체가 아니다 정신적 파산에 가까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까. 안 끝날 것 같은 네거티브 분위기에 백신이 뭔가 기쁜 조짐을 보이는 것 같은데, 어째서 먼 나라 얘기 같은지.
9. 전 세계가 난리거든요
이 난리에도 역 앞에 인형이 서있다. 사람 대신. 뭔 뜻이지? 안녕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잘 있었어?" 혹은 "잘 지네도록해"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내 마음은 안녕하지 않는데...
난 그 만 살고 그냥 죽으련다.
그래? 그럼 안녕.
언어란 참. '아버지 참 오래 사시네요!'라는 역설적 인사말 같다. 내가 부정적 사람이라 그런가. 내가 늘 웃고 다닌다 해도 내 말이 부정적이면 웃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집에 처박혀 있어!"
이 말이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그 사람을 배려한 인사말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너도 그래라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수긍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The end. The end is not the end.
It makes us be bored. Plz. Don't whisper an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