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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Apr 05. 2022

진퇴양난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1. #진퇴양난

  어떤 잘못된 결정을 한 것도, 잘못된 선택을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 버렸나 하고 한탄할 때가 있다.  삶의 염증이나 권태로움이 자신을 마치 범람하는 물처럼 차올라서 자신을 휩쓸어버릴 때가 있다.

이미지 출처https://www.joongang.co.kr/amparticle/23008248


2.#상실의 시대

   슬럼프, 권태, 지루함, 재미없음, 무가치함, 의욕상실, 함정에 빠진 느낌, 진퇴양난, 무기력, 모욕감 같은 어휘가 사슬처럼 엮어서 자신을 치렁치렁 죄수처럼 묶거나, 자신을 뱀처럼 휘감아 목을 조여서 숨이 막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 감정이 들 때가 있다.


  '어떤 일에 한 번 권태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것이 뭐가 됐든 간에 하기 싫어진다. 권태감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일을 장기적으로 해야 할 경우 매우 끔찍한 기분을 맛볼 수도 있다.'(나무 위키, <권태> 중에서)

1990년대 화제작

무라카미하루끼 <상실의 시대>,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직면한 문제 친구 키즈키의 돌연한 죽음, 나오코, 라라 등 내면의 흐름에 따라 삶의 근원적 문제를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세상을 살아가며 주인공의 변화를 그려낸 작품.



   권태는 무기력 내지 자기 함정에서 허부적이게 한다. 물리적 원인은 토파민(신경전달물질) 부족인데, 이는 비타민 D이기도 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인관계에서 치명적일 가능성이 있다. 대인관계 부분은 사실상 스스로 자기 스스로의 자생적 발효를 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의 상실은 노력해도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에서 기인한다. 문제를 풀어도 답이 없을 것이다는 결론을 내릴 때 우리는 절망한다.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상실감은 뱀에 물려서 독이 퍼지듯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마비시킨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종이처럼 접어두거나 유보시키도 좋다. 문제를 꼭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그 문제 외의 문제들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험을 볼 때 풀리지 않는 문제에 사로잡혀서 풀어야 할 쉬운 문제도 풀지 못했다면 더욱 억울하지 않을까. 유보는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회적 환경에서 그 어떤 해답을 얻지 못할 때는 사회적인 염증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그 어떤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달려간다. 극복을 할 수 있는 도전인데 그것에 대한 극복에 대한 좌절이 시치프스처럼 좌절될 때 이에 대한 극단적 좌절감에 못 이긴 마음의 상태가 조각날 때는 마치 온몸이 토막 나서 조각조각 된 듯한 정신적 파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까뮈, 시치프스 신화 참조)


이미지 출처: 시치프스 https://brunch.co.kr/@adfontes/49


3. #삶의 무거운 하중

  '행복하다'는 느낌이나 그럴 가능성이 없을 때는 '웃음'소리조차 거슬리고,  개그맨들의 웃음조차 자신을 비아냥하는 것처럼  거슬린다. 웃음이 얼굴에 그려지지 않는 시절에는 그 사람이 예민하고 신중해지고 삶의 무거운 하중을 지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을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누구든  '남 탓'하기를 좋아하지만 그 문제를 남 탓으로만 돌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내 탓'으로 치부해버리기도 모호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호성에서 그 어떤 단정이나 결론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MZ세대들이 직장을 갖기 어려워 취업전쟁을 치르고 절망하는 것이나 장년(30~40)으로 새파랗게 힘을 제대로 발휘해야 할 때를 멈추어야 할 때도 있다.  중년(40~65)이어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은 중년도  회사에 쫓겨날 처지가 되거나 자영업자도 일이 없을 경우도 좌절하고 절망한다. 


  사회적 환경에서 공항상태이거나 여건이 좋지 않을 때 위기상황에 처한다. 문제는 용기와 희망으로 현실을 타개하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느냐의 여부이다.


   개인의 무능으로 취급하기 위해 단정할 수 없는 경우도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생업의 절벽에서 한 발만 잘 못 내딛으면 떨어져 죽을 것 같은 위태로움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unsustained' 지경에서 뭔가 선택지조차 더 이상 없어질 경우, 그 사람은 결국 극단적 좌절감을 갖게 되는 경우에 맞닥뜨릴 때도 있다.  '극단적 선택' 즉 자살의 촉발이 되는 화약고가 되는데 이 문제 단지 그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분위기에서 올 수도 있다. 죽을만큼 힘든 환경은 죽을 마음이 날 만큼 힘들다.  종용(慫慂)든 “잘 설득하고 달래어 권함” 의미로 누구로부터 자문을 구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난세를 극복할 수 있는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지나치게 성급하지 않았을까. 천천히 열심히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작은 그림은 차츰 그려가면 된다. 무엇을 놓친 것인지 놓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설계하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 또한 중요하다.

   

4. 죽고 싶은 마음 - 사회가 만든 개인의 '죽음' 종용


  인구절벽은  학교든 마을이든 하나 둘 문을 닫는다. 단순이 트렌드의 변화라기보다 거시적 현상이 미시적 측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소중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급기야  자신의 죽음조차 치워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젊었던 사람이 세월이 지나면 잔주름이 지고 늙음은 오기 마련이다. 세월이 번쩍거리고 태양이 뜨고 지는 사이 하루하루 늙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문득 알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어쩌면 죽음은 아름다운 것일지도.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이 없듯이 아름다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유독 자살을 많이 고려하게 만들거나 자살을 종용하는 환경적 요소가 충분하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에 대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생애 스트레스 사건을   다룬다.


<생애 스트레스 사건이란 직업, 경제적 문제, 신체 및 건강상 문제, 정신건강, 가족, 부부, 연애 관계, 대인, 학업 문제 등으로 나타났다.> 자살률 관련기사

(출처https://www.ktn1.net/news/articleView.html?idxno=12198)


  죽고 싶은 마음은 근거는 삶의 의욕을 줄만한 요소를 상실하거나 그것에 누적 계수로 쌓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살의 의미와 만족, 의욕을 줄만한 근거들의 상실이 쌓이고 또 쌓이는 것이다.



  삶에서 기쁨의 요소가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기대를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실망 한다. 기대할 것이 없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가기 위해 자산의 길을 온전히 가면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자문을 구하고 계획을 만들면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낄 때 그만큼 나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일까를 고려해 봐야 한다.  호기심curiosity은 어떤 것이 궁금한 것이고 알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모든 학습의 근원이며, 자신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근간이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도구를 꺼내야 할 때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을 믿고 스스로 온전히 헤쳐나가야 한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해줄 수 있지만 그 사람만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는 그 사람이 풀어야 한다.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5. #결론-마음의 성찰과 의지


  진퇴양난의 중심에는 바로 자신이 있다. 태풍의 눈처럼. 나의 눈은 무엇에 시선을 두고 있는가.  생각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절망은 내가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좌절되었을 때이다. 취지와 시작은 좋았는데 좀처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이다. 이것은 누구를 탓하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좋은 경험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 큰 결과가 났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까마득해 보이고 다음 결과도 좋지 않을 것 같다는 불과 공포가 텅 빈 어둠의 동굴 속에 안개처럼, 어둠처럼 파고든다.

   

  거의 모든 사람의 인생은 백 년을 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부채에 직면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운전하다 사람을 치어 죽여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있다. 어린 나이인데 부모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상을 치러야 할 경우도 있고 갑작스럽게 병으로 부모를 잃을 경우도 있다. 잘해보려는 사업도 망하는 사람이 있고, 과도한 투자가 부채가 되고 사람을 잃을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에게는 잠재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다. 살아있으니까 감당해야 할 문제이지 죽은 사람에게 이 많은 문제들은 한낮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죽으라는 법은 없고, 시간은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것이라며 속삭이며 위로를 해 줄 수 있지만 당면한 이에게는 그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 즉 스스로에게 정당성과 의지, 스스로에게 변명을 한다고 해도 떳떳할 수 있도록 현재를 풀어나가야 한다. 모든  문제가 의도하지 않게 생겼다 해도 그 답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패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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