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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Feb 10. 2022

아궁이

정용화  시를 읽다.

그을음이란 뜨거움에 대한 기록이다.

타고 난 재는 식어버린 열정이다.

잠들지 못한 사연과 마주하다 보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아궁이가 입 벌릴 때마다

아궁이 속에서 하늘이 울었다

내가 울었다.


태허의 자궁 속에서

꿈틀거리던 불씨들이 하나씩

붉은 꽃잎으로 피어나고 있다.


<아궁이> /정용화


<아궁이>는 시인 정용화의  <바깥에 갇히다, p.50 >(1)에 나와있는 시이다.

전문이 아니라  4연과 5연인데, '그을음이란 뜨거움에 대한 기록이다'라는 시어는

절묘한 압축을 단칼에 제시한 선언declaration이다.

숙성된 신비스런 간장 혹은 된장맛 같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는 등단시집이 있는데 2006년 신춘문예 등단한 것 말고는 나이는 알 수 없는 여류시인다.
최승자, 문정희, 정용화, 이해인, 김남조 등의 시인들이 문득 떠오르는 시인인데,
최승자는 어휘가 좀 과격하다면 문정희는 물처럼 부드럽다.
정용화는 다른 시인처럼 알려지지도 않지만 드러나지도 없고 유명세도 없어도 뭐라 함부로 말하기도 무례할 것 같고
그녀의 시는 존경스럽다.


'그을음이란 뜨거움에 대한 기록이다/타고 난 재는 식어버린 열정이다.'
이 시어는 마치 용광로 속에서 뛰쳐나오는 용(龍)이나 불사조가뛰쳐나오서 날개짓이라도 하는 듯 하다.  
시는 단정하면서도 긴 여백 혹은 메아리가 있다.


흉터는 지난 날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떠오르는 모진 기억이다.


저만히 숨기고 싶은 아픔의 비밀의 상자,

내보이고 싶지 않는데

들 킬 것 같고, 들킨 것 같다.

알면서도 묻지도 못한다.


<흉터>/ 김순만


저마다 각자에게 떠오르는 흉터는 다른 형태로 상처가 기록될 것이다.

평론가 김현의 표현을 빌리지면 '죽음은 늙음이 아픔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2)라고

기형도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하며 그리 말한다.


힘겹고 아프고 뭐라고 지금을 말할 수 없는데,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보일러를 올려도 따뜻하지 않다

문풍지(門風紙)를 사다 바른다는 것이.

새우처럼 옹크려 잠을 자려해도

식은 밥솥에 찬 밥처럼 초라해지는 것 같아.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아 아무도 볼 수 없다.


<불면>/김순만


역병의 창궐은 사람들을 철저히 고립시켰다.  소통할 수 없고, 공감이 가지 않는 세상이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젊든 늙었든 불안하기를 매한가지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다른 것처럼 행복과 불행의 저울도 제각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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