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순만 Mar 24. 2022

사(辭)

이인로의 <동문선> 중심으로

  <풀어쓴 한문학개론> 이종찬 著(새문사), 이 책은 다소 읽기가 난해하지만 거시적 안목에서 한문학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책은 서문을 중심으로 운문과 산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운문에서는 시론, 시경, 시부, 악부, 고시, 근체시, 사를 다루었고, 산문에는 론변, 서기, 소령, 주소, 제발류등이 있다.  이 글에서 주로 운문에서 사(辭)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사(辭)라는 뜻은 사상을 말이나 글로 나타낸 것이다. 사전은 말할 때도 말씀 '사'를 사용한다. 좀더 규체으로 보면 한문의 글체중 사(辭), 부(賦), 소(騷)가 있는데 사는 이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사(辭)라는 글은 란(亂, 어지러울 난)에 매울 신(辛)을 합한 글자로 '어지로운 것을 하나로 정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인로의 <동문선>  和歸去來辭 , 도잠도 돌아으니 나도 돌아가리라



  한민족백과사전에서는 사를 '우수와 격정 같은 것을 남방가요의 아름다운 형식을 빌려 표현하는 한문문체'로 정의한다.   사(辭)는 ‘초사(楚辭)’ 혹은 ‘소(騷)’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초나라 땅에서 지어져 초사라고 불렀고, 굴원(屈原)의 「이소(離騷)」가 대표적인 사(辭)이기 때문에 소라고도 하였던 것이다. 이들 명칭이 너무 협의적인 표현이라 생각하여 후세에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들을 일반적으로 사(辭)라 부르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는 사(辭)와 부(賦)는 나눌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사와 부를 사부라고 통합하여 불렀다. 김석주의 『해동사부(海東辭賦)』에서도 사와 부의 구별을 하지 않고 사부라 하였고, 작품도 사와 부를 함께 구별 없이 수록하였다. 간혹 사와 부를 나누어 따로 사용할 경우도 별 구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와 부를 구별한 것은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에서 보인다. “부에는 「이소」보다 깊은 게 없고, 사에는 「상여(相如)」보다 아름다운 게 없다.”라고 한 것이다. 부는 한대에 이르러 특정한 체제를 형성하였다. 부는 『초사』의 한 형식을 계승한 것이다. 그렇지만 비교적 산문의 수법을 많이 운용하여 사와는 다르게 발달하였다. 부는 웅대하거나 독특한 사물들을 아름답고 멋지게 표현하려고 애쓴 서사적 작품이고 사는 우수와 격정 같은 것을 남방가요의 아름다운 형식을 빌려 표현하고 있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사(辭))]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333



  시경은 BC 11~6C 공자가 '사무사(思無邪)'라는 개념으로 311수로 정리하였으며 305로 전해진다.

 [“시 300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논어> ‘위정편’)   蔽: 덮을 폐.] (1)

넓은 범위에서 시의 형식은 풍아송(風雅,)으로 ()은 주로 농경의 고통, 남녀간의 사랑, 위정자의 풍자를 그린 것이며 ()는 각종 외교사절, 사냥에 대한 풍자, 전쟁의 출정 등을 노래하는 시이며, ()은 주(周)나라 노(魯)나라 은(殷)나라 상(商)나라 왕실을 찬송하고 조상들의 업적을 기리는 시이다.


  사(辭)와 부(賦, 구실 부)는 명칭만 다를 뿐 비슷한 문체이며, 구조는 시(詩)와 문(文)의 형태이다.  사(辭)는 초사(楚辭)에서 시작되었고, 부(賦)는 한부(漢賦)에서 시작되었다. 소(騷, 떠들 소)는 <이소(離騷)>라 하는 또 다른 문체이다.



Summary

사(辭) -초사(楚辭) 초사의 대표적 작가: 굴원(屈原)과 송옥(宋玉): 감성적인 내용을 담은 서정성
부(賦)- 한부(漢賦) : 서사적(epic)

소(騷, 떠들 소)- <이소(離騷)>



(1) 사무사(思無邪) 관련기사


“시 300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논어> ‘위정편’).


유명한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발언이다. 공자는 민간에서 전승됐던 시 300여편을 모은 <시경(詩經)>을 가리켜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주옥같은 시 모음집’이라고 칭송했다. ‘사무사’는 공자의 창작 용어가 아니다. <시경>의 한 편인 ‘노송(魯頌) 경편(경篇)’에 등장하는 ‘사무사’ 구절을 인용했을 뿐이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으니 말(馬)을 생각함에 이에 미치는구나(思無邪 思馬斯조)”라는 대목이다. 이 시는 춘추시대 노나라 희공이 백성들의 밭을 피해 머나먼 목장(경)에서 말을 길렀음을 칭송한 노래였다. 키우던 말이 혹여 백성들의 곡식을 짓밟을까봐 목장을 먼 곳으로 조성했다는 시는 ‘덕정(德政)’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공자는 왜 <시경> 300편 전체를 ‘사무사’라는 시의 한 구절만 인용하면서 정리했을까. 적확한 인용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지만 공자가 남긴 알쏭달쏭한 ‘사무사’ 화두를 후세 사람들은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퇴계 이황은 사무사의 ‘무(無)’자를 ‘없게 하다’는 사역형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했다(<논어석의>). ‘생각에 사특함이 없게 한다’는 해석을 통해 수양으로 ‘사무사’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율곡 이이는 “사무사와 무불경(毋不敬·마음과 몸이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은 벽에 걸어두고 늘 잊지 말아야 한다”(<격몽요결>)고 강조했다.


1452년(단종 즉위년) 어린 임금 단종이 ‘사무사’의 뜻을 물었을 때 박팽년이 깔끔하게 정리해준다(<단종실록>).


“생각에 사사로움이 없는 바른 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모든 사물에서 바름을 얻을 것입니다.”


박중손은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서 만백성을 교화시키려 한다면 백성이 불복종한다”고 덧붙였다.


 출처:[여적]사무사(思無邪) - 경향신문 (khan.co.kr)



작가의 이전글 안개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