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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Oct 01. 2022

변명

군중 속의 고독

   죽음의 몇 번의 실패, 나는 죽지 못했다. 존재의 이유와 상실, 이별은  갖가지 의문을 남기며 시간 속에 묻힌다. 그건 낙엽 위에 쌓인 나이처럼 온몸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부식이 거름이 된다. 쇠는 녹에 쓸 지만 나무는 썩고 인간의 몸에서 그토록 향기롭던 냄새는 역겹고 감당하게 어려운 냄새여서 빨리 태워버리거나 땅에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은 자는 살아있는 자들 사이에서 공존할 수 없다.

  죽음의 바다 위에 떠있는 한 척의 배처럼 한 사람의 생명의 저변에는 죽음이 내재되어있다. 배가 언제든 물속에 가라앉거나 뒤집힐 수 있는 것처럼 생명은 죽을만한 여지 속에 공존한다.

  

  왜 사느냐 묻는다면 죽지 못해서 죽음은 삶에서 넘사벽이고 그 벽을 넘으면, 한 순간의 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의미 없는 삶에서 의미의 단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자연스럽고 순리를 따른다.

  

  하늘에 흐린데 마음이 흐리지 않을 수 없고 하늘이 맑은데 내 마음이 맑지 않을 수 없다. 천인 감응은 어느 정도 가능한 엄연한 사실이다.


  새벽안개가 잔뜩 짙은 회색으로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 그 회색 안개를 뒤덮고, 산은 그 안개를 산자락에 빈 틈 없이 스며들어 어디선가 고운 풀 숲에서 사랑이 숨을 쉬는 것 같다.

    

  종이를 덮고 잠든 글들은 누군가 그 글을 읽을 때 하늘로 안개처럼 서성이다가 증발한다. 물은 보일 때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기실 물은 늘 증발하면서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증발처럼 생명들은 그렇게 사라지고 또 하늘에서 내려온다.


   생존을 위한 열망들은 심장처럼 뜨겁다.  매 순간 맥박이 뛰듯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왕따였다. 나의 표정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마음에 들어 하거나 즐겁지 않은데 억지웃음을 웃지도 못했다.

  자신의 색상을 지니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투명하고 싶거나 회색빛이었고 보랏빛 라벤더로 바람에 날리고 싶었다.

  

 나는 소통에 소홀했고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추거나 내가 관심을 가지 않은 대수롭지 않는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스포츠를 싫어했고 밖으로 나돌고 사람들끼리 어울려 갑론을박하는 일은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나 자신을 만들어 가야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음악의 숲 속을 헤매거나 예술에 숨거나 책 틈에 꽂혀있는 접힌 메모처럼, 나무속에 숨은 애벌레처럼 숨는다.


  나는 나를 온전히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지루하고 흥미롭지 않으며 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처럼 나의 흔적은 누군가의 시선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껴주지도 않는다.


 

  세탁기에 옷을 넣었다. 이틀 동안 쌓인 빨래를 돌려놓았다. 빨래를 하는 일은 상쾌함과 기쁨이 빨래통에서 거품을 일으키는 것 같다. 어제 입은 옷을 빨래통에 넣었다. 세제를 넣고 버틀은 누르지 빨래통에 물이 쏟아졌다.

  오후 4시 서두르지 않으면 병원에 늦을지도 몰랐다.

 

  "다섯 시쯤 도착할 예정이에요!"

  병원에 예약을 하고 기여했다. 몸이 천금처럼 무거웠고 무거운 몸은 생각을 마비시켰다.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피를 먹는 드라큘라가 피가 다 떨어졌거나 기름 없이 달리는 차가 겨우 엔진의 마지막에서 멈추어버릴 것 같은.


  서둘러서  가방을 들고 차에 갔다.  며칠 있으면 곧 이사를 해야 하므로 뭐든 차에 넣어두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차에 서둘러 차문을 열려했는데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열쇠가 없다. 열쇠가 없으면 어떻게 해? 나는 이 바보같이 정신을 어디에다 둔 거야 하고 혼자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열쇠를 찾았다. 어디다 둔 것일까 차 열쇠는. 자동 리모컨은 사각이고 특별히 휴대폰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혼미하다. 혹시 내가 중병에라도 걸린 것인가.

  무기력함, 식욕부진, 생애 대한 강한 염증, 흥미를 잃어버린 의욕, 이삿짐을 꾸리고 어디든 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는. 그만.

  

  열쇠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주차할 때 분명 문이 자동으로 잠겼는데.

   어제 입었던 청 윗도리 주머니, 아뿔싸 혹시 세탁기에 들어간 옷 주머니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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