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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Feb 14. 2023

장독대풍경

어둠을 담은 장맛을 혀끝에 닿다


이지러진 골목

어귀에 방긋 웃는 꽃잎으로

미소 지을 때 애잔한 풀포기

서로 기대어 이슬 적시네.


담벼락을 넘는 마음 잎들은 푸른데

그리움 겨워 장독대 항아리에 어둠은

맑고 청아함 무르익어 간장 마냥 검디 검다


한 종지에 숟가락 뜨면

혀끝에 닿은 그 마음 알겠지.


초가지붕 썩어가도

아 푸르른 숲은 향기로워


살갗으로 저며오는

고단함 고이 접어

아 얼룩지지 않는

사랑 꽃피는 정이고파


옷깃을 여미

애잔함으로

손을 잡고 싶다


품 안에 안기는 사랑이고 싶다.

간장만큼 익어가는 어둠이고 싶다.

깊은 어둠이고서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정결히 갇힌 기품이고 싶다.


김순만 글


시골 촌구석 골목에

인적조차 뜸한

한 귀퉁이에도 꽂은 핀다.


분주히 달리는 차도 없고

수첩에 꼭 지켜야 할 약속이라도

옹기종기 깨알처럼 적어놓은

꽉 짜인 일정도 없다.


시간을 잊어버린 소녀처럼,

발 길 닿는 대로 꽃이 핀다.


학교 가는 것을

잊어버린 소녀의 입가에 피어난 웃음처럼

그 무엇도 알지 못해도

가슴이 부풀게 하는 기쁨인 것을,


산기슭 쓰러진 집 앞이 피어난

매화꽃은

설레는 바람의 향기에

어김없는 시간에 꽃을 피운다.


그 언젠가

사랑이 꽃을 피웠던

눈물이 핑 돌만큼

정겨웠던 곳이라고.


침 흘리며 멍에를 이고 가는

황소도,

촐랑거리며  저희들끼리

금방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참새도,

수백 년을 버티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고목도,

못다 한 꿈과 애잔하게 마음 졸였을

어미의 못다 준 사랑을 알고 있다고,

무던히도 힘든 세월은

이마의 주름처럼 골이 패이고


이제는 하얀 휴지조각처럼

가볍게 떠날 할머니의 몸도

소녀의 설렘이 가슴에 담긴 거라고.


아득히 부는 찬 겨울바람도

봄바람의 활기찬 바람도

무더위에 땀을 흘리게 하는 뜨거운 바람도

못다 한, 주고 싶은 사랑을 가득 담은

연서의 글씨들이

민들레 홀씨로 날려간 것을

다 알고 있노라고.


투명한 하늘이,

비에 젖은

진흙탕 속에 발걸음이

다 묻히고 또 묻혀서

흔적이 모두 지워진 발자국은

땅만이 알고

하늘은 알고 있다고.


황홀한 저녁노을에 모두

파묻어

이제 마음이 모두 까맣게

타버린 어둠 속에,

아 그 아리따운 마음은

별들로 반짝인다.


젊음이 빠져나가고

늙은 개가 개집이 들어가고

그 개의 먹이를 준 할머니의 방에

불이 꺼지고.

하늘의 별은 그 수많은

사연은 모두 다 아름다웠던

사랑이었다고

밤하늘에 반짝인다.


<촌구석 골목에서 쪼그려 앉아 하늘을 보다>


글 김순만

2023.2.14. Saint Valentin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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