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진 골목
어귀에 방긋 웃는 꽃잎으로
미소 지을 때 애잔한 풀포기
서로 기대어 이슬 적시네.
담벼락을 넘는 마음 잎들은 푸른데
그리움 겨워 장독대 항아리에 어둠은
맑고 청아함 무르익어 간장 마냥 검디 검다
한 종지에 숟가락 뜨면
혀끝에 닿은 그 마음 알겠지.
초가지붕 썩어가도
아 푸르른 숲은 향기로워
살갗으로 저며오는
고단함 고이 접어
아 얼룩지지 않는
사랑 꽃피는 정이고파
옷깃을 여미는
애잔함으로
손을 잡고 싶다
품 안에 안기는 사랑이고 싶다.
간장만큼 익어가는 어둠이고 싶다.
깊은 어둠이고서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정결히 갇힌 기품이고 싶다.
김순만 글
시골 촌구석 골목에
인적조차 뜸한
한 귀퉁이에도 꽂은 핀다.
분주히 달리는 차도 없고
수첩에 꼭 지켜야 할 약속이라도
옹기종기 깨알처럼 적어놓은
꽉 짜인 일정도 없다.
시간을 잊어버린 소녀처럼,
발 길 닿는 대로 꽃이 핀다.
학교 가는 것을
잊어버린 소녀의 입가에 피어난 웃음처럼
그 무엇도 알지 못해도
가슴이 부풀게 하는 기쁨인 것을,
산기슭 쓰러진 집 앞이 피어난
매화꽃은
설레는 바람의 향기에
어김없는 시간에 꽃을 피운다.
그 언젠가
사랑이 꽃을 피웠던
눈물이 핑 돌만큼
정겨웠던 곳이라고.
침 흘리며 멍에를 이고 가는
황소도,
촐랑거리며 저희들끼리
금방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참새도,
수백 년을 버티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고목도,
못다 한 꿈과 애잔하게 마음 졸였을
어미의 못다 준 사랑을 알고 있다고,
무던히도 힘든 세월은
이마의 주름처럼 골이 패이고
이제는 하얀 휴지조각처럼
가볍게 떠날 할머니의 몸도
소녀의 설렘이 가슴에 담긴 거라고.
아득히 부는 찬 겨울바람도
봄바람의 활기찬 바람도
무더위에 땀을 흘리게 하는 뜨거운 바람도
못다 한, 주고 싶은 사랑을 가득 담은
연서의 글씨들이
민들레 홀씨로 날려간 것을
다 알고 있노라고.
투명한 하늘이,
비에 젖은
진흙탕 속에 발걸음이
다 묻히고 또 묻혀서
흔적이 모두 지워진 발자국은
땅만이 알고
하늘은 알고 있다고.
황홀한 저녁노을에 모두
파묻어
이제 마음이 모두 까맣게
타버린 어둠 속에,
아 그 아리따운 마음은
별들로 반짝인다.
젊음이 빠져나가고
늙은 개가 개집이 들어가고
그 개의 먹이를 준 할머니의 방에
불이 꺼지고.
하늘의 별은 그 수많은
사연은 모두 다 아름다웠던
사랑이었다고
밤하늘에 반짝인다.
<촌구석 골목에서 쪼그려 앉아 하늘을 보다>
글 김순만
2023.2.14. Saint Valentine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