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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Feb 14. 2023

나무

가만히 있어도 떠났던 것이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떠나지 않는 나무처럼.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죽음도 아슴히

맞이할 수 있는,

그렇게 뿌리를 내려

그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해

힘들었고 고달프고

애잔하고 슬펐다.


눈물이 스며들어

더 단단히 뿌리가 더

땅속으로 번지고

번지는 물감은 하늘을

서녘에 물들여 놓았다.


떠나고 싶다.

목숨이 다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이 다 하지 않는 날,

멈추고 싶었다.


마을 어귀에

쪼그려 앉은

침묵은

그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무슨 언어를

날려 보냈을까.


눈이 날리고

꽃잎이 날리고

낙엽이 날리는 것을

보면 나무도

거기서 뿌리를 내렸으면서도

잎들은 늘

떠났던 것이다.


저버려야 할 꿈처럼

나무도 날리는 낙엽에

생각을 날려보냈던 거야.


그러고 보면

나무는 그 자리에서

그냥 서 있었으면서도

떠났던 것이고

자신의 일부를 바람에 날렸다.


낙엽이 날아가고

씨앗이 날아가고.

생명이 날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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