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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Apr 03. 2023

벼랑 끝에 서다

포대기에 싸여있을지라도

가슴이 저미어 온다.

모든 것이 아프고 힘들 때가 있기에.

위로하는 어떤 말도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등뒤로 무너져 내리는 땅.

뒷걸음 치면 죽을 것 같아서

어쩌지 못하고 앞으로 가는데

에는  땅이 없다.

그때 나는 세상의 끝에 서 있는 것이다.


발길질을 해도 나는 앞으로 갈 수가 없다.

발이 움직이지 않아서.


참고 견디지 말고

앞으로 가야 한다. 

그때가 바로 자유다.


두 발로 걷는 게 어디 쉬운가

두 발로 걷기 시작했을 때가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그때는 걷는 것에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되어 걸으면

어느 때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날개도 없으면서.


나는 웅크려서

어둠의 등뒤에서 울곤 했다.

그리고 잠들었다.

얼마나 많을 침을 흘리며 잠이 들었을까.


애당초 나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며칠을 밥도 먹지 않고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이 잠만 잤다.


그때도 온전히

세상은 잘 돌아갔을 텐데.


워낙 어릴 적이어서

기억이 아니지 않다.


엄마 등에서 살 때가 좋았다.

포대기는 튼튼했을 테니까.

나이가 들어서

잠들 때는 까딱하면 죽는다.


두 발로 걷는 것이 익숙한데도

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세상에서 두 발로 서서

걷는다는 것은

엄두가 안 날 때가 있다.

설마 내가? 아니 내가 바로 설마다.


헤아릴 수 없이 걸어왔던

발걸음, 나는 늘 그게 세상의 끝인 듯했으나

그 끝이 또 다른 시작이었다.


바닥에 엎드려 잠 들 때는

아이든 어른이든 무작정 좋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눈감고 자도 세상에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뭐라 할 것 같은 생각뿐이지.


쉬엄쉬엄 가도 좋다. 

세상의 끝이 끝이 아닐 수 있으니.

이수근 원작(추정) 조각 조명호
Shutterstock.com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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