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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Apr 08. 2023

평정심(平靜心)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라

몸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너무 편하고 안락하면 게으름에 빠지기 쉽다.

잠들 때는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숙면이 되도록 무심해져야 한다.


 법정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P. 219



  아심여칭(我心如稱) 내 마음이 저울과 같다는 의미로 칭(稱)은 저울대 칭이며, 저울 대 칭을 칭(秤)이라고 쓰기도 한다. 때로는 저울 대 '형(衡)'을 쓰기도 한다. 형은 뿔 각(角)에서 대(大) 자의 의미는 소이며, 뿔 달린 소가 '쇠코뚜레(소의 코청을 꿰뚫어 끼는 나무 고리)'라는 의미이고 하다. 균형(均衡)이란 좌우로 치우침 없이 균형을 잡는 일이다.

  한 사람에게 뿔이 나거나 화가 나면 그 사람은 평정심을 잃는다. 너무 슬프거나 너무 기뻐도 평정심을 잃는 것이라 본다.

  사람과의 만남에도 어느 때는 좋을 때도 있지만 어느 때는 감정이 상할 때도 있다. '그 사람은 어째서 내 마음을 몰라 주는가'라고 한탄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사람의 마음을 정작 알고 있는가.'에 대한 환원된 질문을 해볼 필요도 있다. (논어 학이,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전쟁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적군과 아군은 분별하지 못함이다. 아군은 적군이라 생각해서 죽였더니 아군이고 고,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적군일 때 참 바로 '란(亂)' 즉 어지러운 일인 것이다.

  

  부귀빈천은 인연에서 나누어진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소통하는가에 따라 관심사가 달라지고 현명함이 달라진다. 인연이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 즉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마음이냐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중국 한비자는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이라고 했다.  이 말의 뜻은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도 만나고 ·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연인란 허망한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어도 서로는 만나지 못하고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있어도 내가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어쩌면 세상살이가 모두 인연이다. 물건을 잃어버려서 찾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pixabay.com



"(중략)....

행복하려면 조촐한 삶과

드높은 영혼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애지중지하는가.

얼굴에 기미가 끼었는가 안 끼었는가,

체중이 얼마나 불었는가 줄었는가에 최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의 무게가

정신의 투명도가 어떤가에는 거의 무관심하다.

내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자기 분수를 헤아려 삶의 질을 높여 갈 수 있다."


<깨어 있는 사람>

법정 잠언집 p.190~191.


  법정스님은 <깨어 있는 사람>의 글 내용에 스님은 혼자 창호지를 바르면서 생각이 난 모양이시다. "도배가 되었는 청소가 되었든 집 고치는 일이 되었든 내 손으로 할 때 행복을 경험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회향(回向)이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뭐라고 하면 보상을 받고 싶고, 보상이 없으면 칭찬이라도 받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칭찬해 주는 일은 돈이 들지도 않지만 칭찬받은 사람의 자존삼을 심어준다. 하지만 칭찬해 줄 것과 비난받을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잘못하고 잘못된 점을 칭찬해 주는 것은 도리어 화를 부른다.



왕충의 논형(論䚘)에서 55 감류(感類)편은 '사물에 감응하다'라는 의미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음양의 기가 조화롭지 못하면 재앙과 이변이 발생한다. 이는 전대부 터 내려오는 재앙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저절로 나타나는 기의 작용일 수도 있다. 성현은 자신도 동류의 사물에 감응한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재앙과 이변의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면 스스로 두려워하면서 반성한 다.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자책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두려워한다. 반드시 구체적인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 글의 다음 내용에 탕왕은 자신이 잘못이 없음에도 자책하였다.  “탕왕이 자책하자 하늘은 비를 내려 감응했다.” 왕은 본래부터 잘못이 없는데도 다섯 가지 잘못을 자책하고, 하늘 은 잘못도 없는 탕왕에 감응해서 비를 내렸다. 잘못이 없는데도 가뭄이 닥쳤다면 비는 자책과 상관이 없어야 한다.


  세상에는 잘못이 없음에도 죽어야 하고, 떠나야 하고 헤어져야 하고 죽어야 할 때가 있다.  한식의 어원이 되는 개자추도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벅지를 발라 고기로 대접을 받았던 사람에게 화형을 당해서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좋다고 해서 누군가를 돌봐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도와주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도움을 주는 사람을 원수로 갚을 수도 있다. 그래서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거지에게 돈을 공짜로 주면 거지행세를 하면 공짜로 돈을 생기니 그 사람이 거지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어를 아끼고 평정심의 마음으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 세상에서 바라는 마음이 아닌 비움의 마음이어야 떠날 때도 홀가분하다.



출처: 불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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