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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Jun 16. 2020

상대적 진리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

  하루동안 일을 하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다. 하루동안 여행을 갔다왔다고 해서 세상의 평화가 오지 않는다.뉴스를 하루 보지 않았다 하여 시사에 대해 문외한 것도 아니며,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우리는 습관이란 함정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 이름 모른다고 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가난하게 살라는 법도 없다. 국가는 철저한 국민을 쇠뇌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해도 국민은 잘 모른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국민을 협박할 수도 있다. 광주5•16과 제주4•3은 국민을 보호하는 듯 하면서도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절대적인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럴 것이라 믿는다.  경찰이 바르게 살 것 같지만 그들도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고, 정의를 부르짓는 판사도 매수 될 수 있고 편협할 수 있다.

  


  성경은 절대적인 진리인가? 

  

  그리스트교는 다분히 2분법적 요소를 지닌다. 지배와 피지배처럼 창조물과 피조물이다. 구원받을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한자, 천국과 지옥, 믿음과 불신이다. 대체 무엇을 믿으면 구원이고 무엇을 믿지 않으면 지옥인가. 믿고 말고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다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는 모순이 따른다. 

  

  믿음(faith)에는 늘 의심이 동반된다.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한 서로는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무턱대놓고 믿음을 갖는 사이 상대는 외도라거나 딴짓을 한다. 인간의 배신과 불신의 근원은 일방적인 믿음에 있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해부하면 외부의 의심할 여지를 모두 거두어낸 명쾌한 진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믿은 것에 참담하고 무자비하고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 

 

 절대적 진리한 세상에서 존재하는가의 질문은 다분이 주관적이다. 이 주관이 객관성을 갖으려면 '모두'가 공감하는 그 무엇이 존재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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