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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부엉 Mar 11. 2019

대충 살고 싶어서 대충 살았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지난 2018년 10월, 서랍속에 넣어놓았던 글.

6개월이 지나서 다시 꺼내 보니 새롭다. 이 글을 지금 발행하는 이유는 앞으로 내 삶에 펼쳐질 무한한 변곡속에서 쉽게 좌절하고 속상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이다. 어떻게든 지나올 굴곡이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잘 비교해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또 다시 구렁텅이에 빠졌을때 쉽게 빠져나오는 법을 반추하기 위해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이 일기를 발행해놓으려 한다 :-)



2018.10.31


최근 6개월 간 정말 대충 살았다고 자부한다.

열정과 욕심이 없으니, 무엇이든 대충하게 되고 책임회피와 업무축소를 위해 부단히도 머리를 굴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또 다시 1개월을 대충 살았다. 왜 이렇게 살지, 왜 살지, 삶의 목적은 뭐지, 도대체 산다는 것은 뭐지... 후회와 자조의 무한 사이클로 가득했던 30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 치열하게도 살아보고, 나태하게도 살아보고, 눈빛이 반짝반짝하게도 살아보고, 매너리즘과 허무에도 빠져보아야 인간답지 않을까. 그래야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job)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쓰레기였을지언정,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냥 내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생각이 이끄는대로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며 주체적으로 살았을 뿐이다. '나' 라는 페르소나가 몇 개 추가된 정도로만 생각하자. 나는 그리 잘 못 산 것이 아니다.


최근 6개월 이전에, 내 인생에서 대충 살았던 시기가 한번 더 있다. 취준생이었던 시절이다.

정말 가고 싶던 기업의 입사 문턱에서 넘어진 후,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비단 취업준비기간에서 비롯된 번아웃이 아니었다. 사회라는 문턱까지 오기 위해 그동안 넘어왔던 수많은 허들들, 그토록 지겨웠던 학창시절과 대입 입시, 지루했던 전공 강의와 그럼에도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의지의 밤들, 취향과 적성을 찾아 헤맸던 활동과 도전들이 나를 지치게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이 문턱하나 넘지 못하다니. 그리고 이까짓 문턱 하나 못 넘었다고 이토록 좌절감이 몰려오다니.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던 건 아닌데- 하는 허무함과 분노감이 나를 번아웃시켰다.


취직이 안되었는데 취업준비를 더 이상 하고싶지도 않았고, 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해야한다는 상황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한 번은 저녁밥을 먹다가, 식탁위에서 느닷없이 눈물을 흘린적이 있다. 정말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펑펑 터져버렸다. 당황한 가족들에게 어렵사리 마음을 터놓았다. 눈물을 참느라 기억이 뚜렸하진 않지만, 아빠의 한 마디가 그 시절의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그냥 대충 해. 취직 되든 말든, 대충 해버려. 너무 애쓰지 말거라."


애쓰지 말고 대충해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말 대충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대충 살았다. 대충 살아도 살아졌고 그 해에 나는 취직을 했다. 마음의 부담을 한 층 덜고 나니, 정말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온 힘을 다하고 싶은 기업이 생겨 최선을 다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입사원서를 내는 곳은 대충 쓰게 되었다.


대충인 듯 아닌 듯 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 해에 처음으로 불안과 목표의식 없이 대충 살았고, 대충 살아도 살아지게 된다는 법을 배웠다.


갑자기 지난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그 때도 대충 살았는데, 잘 풀렸잖아. 지금도 괜찮을 꺼야. 잠깐 느슨하게 산 것 뿐이고, 이제 다시 열심히 살면 되는 거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괜챃아. 2018년의 절반이 헛되이 보내졌지만,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니야. 언젠가 지금을 되돌아 보면, 허무맹랑했던 그 시기가 또 한번의 도움닫기가 되었다고 반추할 수 있을꺼야.

정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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