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죽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노래를 듣고 싶나요?
별 일이 아니었는데도 작은 바위처럼 든든히 움직이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조퇴하며 걸었던 담벼락 옆, 대학교 시험기간에 혼자 공부하던 빈 강의실. 고기집에서 혼자 고기 구워먹었던 일. 이런 장면들은 어떤 감정을 일으키기 보다는 두부처럼 담백하다. 기쁜 마음에 머릿 속에 폭죽이 터지는 듯한 기억도 아니었고, 슬퍼서 펑펑 울던 기억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기억으로 계속 남아 있을까.
살면서 가장 기뻤을 때가 언제에요? 살면서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에요?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가끔 길을 걷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은 신기하게도 별 의미 없고, 별 감흥 없는 순간들이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기 때문일까. 자극적인 음식에 쉽게 질리는 것처럼 자극적인 기억에도 쉽게 질려 잊은 건가 싶기도 하다.
나에겐 노래도 그렇다. 자극적인 노래는 몇 주간을 반복해서 듣다가 이내 물린다. 며칠만에 물리기도 한다. 문토(munto) 모임에서 죽기 전에 무슨 노래를 들으며 죽으면 좋은지에 대해 글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 별 고민없이 정재일의 wonderful days theme III (piano ver.)가 생각난다. 가사 없이 피아노만 연주되는 노래다. 8년 정도 내내 듣던 노래였다. 아무리 좋은 노래여도 시간이 지나면 저 아래 플레이리스트로 밀리고 안 듣게 된다. 이 노래는 신기하게도 계속 들었다. 대학교 때 처음 듣고 mp3 파일을 구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해 놓고, 자기 전에 내 미니홈피에 접속해서 이 노래를 켠 채로 잤다. 시험공부 할 때도, 레포트 쓸 때도, 입사원서 쓸 때도 이 노래를 들었다.
한동안 듣지 않다 생각나 지금 들어보니 새롭진 않지만 질리지도 않는다. 여전히 좋다. 길을 걷다 우연히 '꽂혀' 반복적으로 듣는 노래들은 대개 노래가 주인이 된다. 노래가 방문을 열면 내 방 안에 있던 감정들이 오랜만에 산책 나가는 강아지들처럼 꼬리를 흔들며 나간다. 이 노래는 거실 한 가운데 틀어두면 그 때 그 노래가 좋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이 나와 어느 정도 듣다가 다 들었다 싶으면 다시 방 문 닫고 들어가는 거 같다.
죽을 때는 어떤 감정일지 모르겠다. 지금 같아선 아쉬움이 너무 크겠다. 이 노래를 틀면 그 때에 맞는 감정이 나와 알아서 노래를 듣다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가겠지 싶다. 죽기 전에 위안이 되는 노래는 아니겠지만 가장 적절한 노래라 생각한다. 많은 시간, 오랜 동안, 많은 것들을 함께한 노래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