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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Jul 01. 2019

당신은 어떤 성격이에요?

우리는 무지개보다 위대하다.


     나는 A형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잠깐 경험한 나의 행동을 A형에 맞춰 이해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그랬어", "맞어 그래"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일관성있는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앞으로 나와 함께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혈액형의 특성에 맞춰 예상하려 하기도 한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고 두려워 한다. 무엇이든 정의 내리지 않은 상태로 두는 것에 대해 꽤 큰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 이런 불편함은 인간관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그랬을까, 앞으로 어떻게 할까 등의 모호함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모호함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한 두가지의 특성으로 그 사람의 개인적 성향의 평균을 정의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는 무슨 성격이야"라고 표현한다. 조용한 사람, 활발한 사람, 소심한 사람, 다혈질인 사람. 한 사람에게 관찰할 수 있는 수많은 행동 중 인상깊거나, 많이 볼 수 있는 행동적 특성을 통해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덜 중요하고 덜 근본적이라 생각되어지는 특성들은 불필요한 식재료처럼 버려진다. 


     어렸을 때 비가 개고 무지개를 보았는데 빨강과 노랑이 보였다. 그 광경이 예뻐 도화지에 무지개를 그릴 때 나는 단 두 가지 색으로만 무지개를 그렸다. 무지개의 완전한 모습이고 색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치원에서 무지개가 7가지 색이라는 것을 배웠다. 듣고 보니 그런 거 같았다. 그 이후로는 7가지 색으로 무지개를 그렸다. 2가지였던 색이 7가지가 되니 더 예뻐 보였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 사실 무지개가 7가지 색이 아니라 수 백 수만가지 색의 조합인 것을 학교이서 배웠다. 무지개가 7가지 색이 된 것은 단지 뉴턴이 7음계에 빗대 무지개를 표현하였기 때문이고, 우리나라가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 일곱빛깔 무지개로 칭하였기 때문이다. 그 뒤에 학교숙제로 제출한 그림 숙제엔 파란 하늘이 있고 거기엔 일곱가지 색의 무지개가 있었다. 나는 무지개를 그렸지만 그것은 무지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지개를 워해서도 아니었다.


      매우 바쁜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물 한 컵 더 달라고 큰 소리를 치지 못한다. 사람이 옆까지 꽉꽉 차 있는 식당에서 나는 주위사람이 놀라 쳐다볼 정도로 복식호흡하며 직원분을 부른다. 누가 출근 길에 내 앞 줄을 새치기해도 그려려니 넘어 간다. 지하철 문이 열리는데 내리기도 전에 누군가 몸을 들이밀며 타려고 하면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어깨를 부딪히며 내린다. 그리고 난생처음보는 타인과 눈싸움을 하며 내 갈 길을 간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디바이커를 30분 단위로 짜고 아웃풋은 실행가능한 아웃풋이 있는지 한 톨 한 톨 점검했다. 아웃풋 목표가 다른 목표와 어우러져 MECE하게 구성 됐는지 비문은 없는지 확인한다. 200억 짜리 예산을 사용하는 시즌 포트폴리오 구성하다가 "아 힘들어서 못하겠다" 한 마디하며 대충 퍼센티지 비중으로 검토를 마친적이 있다.


     문맥이라고는 하나도 파악할 수 없고, 일관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저 어지러운 진술을 건너 당신에게 묻는다. 위의 진술이 가리키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나의 행동의 모든 것, 나의 생각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그것을 1분 이내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당신은 수 만가지 색의 무지개를 7가지 색이 아니라 수 만가지 색 그대로로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가?


     나는 사람이 무지개보다 위대하다고 믿는다. 나는 사람이 무지개보다 더 풍부한 색을 띠고 있다 믿는다. 그러나 가끔 내 스스로조차도 무지개를 제대로 보기 위한 노력만큼 타인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능력이 그에 못 미치기 때문에, 더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럴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타인의 성격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산다. 혈액형을 설명하는 문장들, MBTI에 나오는 몇 가지의 유형들, 내향, 외향, 소심, 대범 등의 몇 가지 반대를 이루는 단어들의 쌍으로 이름표를 붙인다. 이름표를 만들어 붙이려다 보니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로는 분명 이 행동을 보긴 봤는데 만들어진 단어에서 무엇을 골라 이름 붙일지 모르겠다. 혹은 이 행동에 딱 맞는 단어는 없는 거 같다. 둘째로는 한 사람이 보이는 행동이 여러가지고 비슷한 상황에서도 보이는 행동이 너무 달라 어떤 이름표를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셋째로는 한 10개 정도 몸에 붙여놓고 보니 더 이상 붙일 곳은 남아 있지 않고 그를 설명할 이름표는 한 20개 정도는 더 붙여야 되는 상황이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단어, 가지고 있는 이름표, 붙일 수 있는만큼의 이름표를 타인의 몸 어딘가에 잘 보이게 붙인다. 동의없이.


     시간이 지나면 대강 사람들이 나의 등과 가슴에 어떤 이름표를 붙였는지 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표를 선택하여 뗄 수 없고, 마음에 드는 이름표를 골라 붙일 수 없다. 이름표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기 위해 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울하다 말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해 쓴 글이다.


     우리는 무지개보다 위대하다. 무지개는 7가지 색이 아니다. 우리는 무지개보다 다채롭다. 우리는 몇 가지의 색으로 그릴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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