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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Jul 17. 2019

가장 먼저인 것들

     처음 보는 음식점의 문을 연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알고 들어가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혼자 밥을 잘 먹다보니 굳이 귀찮아서 검색을 하지 않는다. 눈이 가는데로 발이 가는데로 손에 잡히는데로 들어간다. 많이 더럽지만 않으면 된다. 가리는 음식도 딱히 없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거리낌 없이 메뉴판을 손에 쥐고 펼친다. 대학생 때가 생각난다. 돈은 없지만 그렇게 돈 쓸 곳이 많던 시절이다. 그 때는 어딜 들어가든 메뉴가격의 상한선이 있었다. 라면과 파스타의 차이도 잘 모르는 채로 들어가서는 라면의 10배는 되는 가격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던 때다. 용기 내서 까르보나라는 시켰다. 그러나 버섯토마토어쩌구 파스타는 감히 시키지 못했다. 파스타가 라면의 20배라면 경제공황아닌가? 뼈해장국집에서는 감자탕이 고급 음식인 줄 알았다. 김밥천국에서는 항상 기본김밥을 먹었다. 참치김밥은 태평양에서 갓 잡아 올린 참치를 넣은 김밥인 것처럼 가뭄에 콩나듯 먹었다. 스무살엔 서민 음식점에 들어가서도 감히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많았다.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적절한 때였다. 사실 대개 없다가 간혹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 시절에 더 적절한 말이다. 직장인이 되니 그런 걱정은 없어 좋다. 야근할 때 내 책상 위엔 김밥천국의 킹 소세지 김밥이 먹다 남아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발 치에 놓인 쓰레기통과 낭비할 시간만 비어있다.


     학생 때에 비해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은 적어졌더라도 맛 없는 음식 먹기 싫은 것은 똑같다. 맛 없는 음식을 먹었을 때 중에서도 제일 억울한 건 사실 그 집에서 그게 제일 맛 없는 것이었을 경우다. 다른 맛있는 것도 있는데 하필 내가 맛없는 것을 먹었을 때처럼 억울한 경우는 없다. 따로 검색은 하기 싫고, 검색해도 메뉴 추천은 안나오는 식당에서 최소한 실패하지 않는 나만의 방법은 메뉴판 가장 첫페이지 가장 위에 있는 첫번째 음식을 시키는 것이다.


     식당 주인이 된 상상을 해본다. 식당을 하기 전부터 어떤 음식을 할지는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메뉴판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주인이 가장 자신있었던 음식이리라 생각한다. 첫 손님을 맞이하면 첫 메뉴로 이 음식을 시키길 바라며 메뉴를 써내려 갔을 테다. 처음 들른 손님이 뭐가 맛있냐고 물으면 주인은 멋쩍게 웃으며 다 맛있다고 하겠지만 머릿속엔 메뉴판에 가장 처음 적혀있는 음식이 떠올랐을 것이 분명하다. 이 식당의 주인분께서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한번 볼까하는 호기심에 메뉴를 펼친다. 그 음식은 나를 먹이겠지만 동시에 그 주인의 가족들도 먹였던 음식이고 앞으로도 먹일 음식일 것이다.


     식당 주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식을 메뉴판에 하나 하나 써내려가는 것. 그 메뉴 하나 하나 모두 자신의 것이고 밉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 중에 맨 처음 음식이 가장 애착 가고 자신 있는 음식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나의 생각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내려 간다면 나는 가장 먼저 무엇을 적어 내려갈 것인가. 정성스런 음식을 준비하고 메뉴에 쓰는 주인과 달리 나에겐 내가 싫어하는 것들도 적어야 할테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가장 먼저 쓸 나의 것은 무엇인가.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말하고 그 뒤에 가장 처음 나를 무엇이라 소개할 것인가. 직업을 말할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까.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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