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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Jul 22. 2019

비범과 평범

평범+평범+평범+ (중략) + 평범 = 비범

     "성공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는 달라질 수 있다."


     이 당연한 말을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없다. 학창시절 성공은 숫자로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통계적으로 비범한 숫자의 주인이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단 믿음은 복습에 복습을 거듭했다. 수우미양가로 우리를 나누었고, 백분율로 나누었고, 등급으로 나누었고 ABCD로 나누었고 우리를 나누는 방법은 수만가지는 되는 것처럼 보였다. 대개 상위 20%의 비범한 성적이 성공이었고 나머지는 실패였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성과는 동료보다 비교적 20% 상위에 위치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책상 위 모니터를 바라보며 가지는 긴장감, 회의 때의 약간의 스트레스가 아직도 내게서 졸업하지 못한 성적표에 비범한 숫자를 새기기 위한 마음에 비롯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평가할 수 있는 매 행동마다 비범한 성적표를 받기 위해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비범한 무엇인가를 하려다 보니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게 적었다. 매 첫걸음은 어색할 수 밖에 없는 법인데 나는 서기도 전에 캣워크를 하길 바라는 갓난아기였다. "실수", "불완전", "미숙"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서투른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을 꺼렸다. 그러다보니 할 수 있는 게 점점 적어졌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적어졌고, 물을 수 있는 것들이 적어졌다. 그것을 체면이라고 해야 하나? 체면과는 다른 것 같다. 체면을 차리는 것보다 더 곤란한 무엇인거였던 것 같다. 피카소가 그린 모든 그림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고, 모차르트가 지었던 수많은 교향곡들이 모두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일까?


     글을 쓸 때도 쓰는 모든 문장이 비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글을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문장 하나를 쓰고 보니 이리 초라한 문장이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글을 덜 쓰다 보니 이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제대로 옮길 수도 없게 되더니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하려다보니 평범을 편식하고, 그러다 보니 거식증에 걸렸다. 비범한 음식을 만들려다보니 입에 넣지도 못할 무언가를 만들어 버렸다. 대단한 글을 쓰려다보니 무슨 뜻인지도 모를 문장들만 늘어졌다.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쓰고 싶은 대로 쓰자.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쓰고 싶은 것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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