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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Jul 27. 2019

유리를 닮은 당신에게

   길가다 우연히 고양이처럼 마주치는 상점에 들어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살 생각은 하나도 없으면서 가게를 둘러보는 것은 가게를 지키는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끔 한다. 그래도 새로운 물건들을 눈에 담는 나의 즐거움이 주인이 조금 뒤 겪게 될 작은 아쉬움 보다는 훨씬 크다 믿는다. 전 지구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가슴을 다독인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 10이고, 주인이 느끼는 아쉬움이 5라면 남은 5는 지구어디엔가 씨앗처럼 뿌려지겠지.


   처음 보는 가게, 처음 보는 물건들 사이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유리컵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시선이 잠깐 머무는 곳들이 있다. 시끄럽게 들어오는 전철, 횡단보도의 하얀 선, 카페의 전등, 길 건너 할머니가 무겁게 들고 있는 검정 비닐봉지. 그런 사소한 것들은 걸음을 멈추겐 못해도 잠이 부족해 벌건 눈은 잠시 멈추게 한다. 호기심 많은 손목시계도 그 순간은 잠시 그친다.


   짙은 색의 나무테이블 위에 진열된 유리잔을 볼 때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다. 유리에 끌리는 마음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이유 없이 끌리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읽은 김기택의 [유리에게] 라는 시를 읽으니 내가 유리를 보며 느끼는 것이 무엇이고 왜 끌리는지 어렴 풋이 알 거 같았다.


네가 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작은 충격에도 쉬이 깨질 것 같아 불안하다

쨍그란 큰 울음 한번 울고 나면

박살난 네 몸 하나하나는

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

큰 충격에도 끄덕하지 않을 네가 바위라면

유리가 되기 전까지 수만 년

깊은 땅속에서 잠자던 거대한 바위라면

내 마음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 김기택, "유리에게" 중


   나는 약하다. 누군가는 강하겠으나 그 사람의 아주 작은 어떤 부분은 분명 유리일 것이라 믿는다. 아무리 단단한 근육으로 몸을 두른 사람이라도 코와 입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유리같이 약한 부분이 있어야 오히려 살 수 있다 믿는다. 누구나 소중한 것들이 하나씩은 있는 법이고, 소중한 것들은 대개 쉽게 깨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담아도 자신의 생김새대로 다른 모양으로 담는 유리 잔이 좋다. 우리가 같은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봐도 그것을 담아 낸 모양이 서로 다른 것을 보면 우리도 유리잔 같은 구석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깨지기 쉬운 유리 잔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늦은 밤에 옹기종기 모여 손에 쥔 소주 잔을 서로 부딪힌다. 결코 깨어지지 않을 강도로 조심하며 부딪힌다. 서로의 몸을 부딪히기엔 어색한 우리가 유리잔을 빌려 쨍그랑거리는 포옹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신과 포옹하긴 아무래도 어색하고, 조금 쑥쓰러우니 잔을 부딪힌다. 나를 닮은 유리잔으로 당신을 닮은 유리잔에 인사합니다. 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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