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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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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Aug 12. 2019

퇴사한 회사의 과장님이 나를 만나러 왔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팀장님이 점심이나 같이 하자며 회사로 찾아 오신단다. 이직한지 한달 된 사람들에게 꼭 찾아가 밥을 함께 드신다. 같은 회사에서 일할 때도 왜 그러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 팀장님이 이번엔 나를 찾아오신다고 점심시간이 언제인지를 물으신다.


     과장님이 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회사를 우르르 빠져나간다. 오늘 약속이 있으니 따로 점심을 먹겠습니다 하고 나왔는데 약속이 있다는 게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기서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과장님을 뵈니 오랜만이라 반갑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드러난 장난기를 두꺼운 뿔테 안경이 조금 가려주는 것 같다. "과장님 비도 안오는데 우산은 왜 쓰셨어요 걷으세요"


     어떻게 지냈냐, 다닐만하냐, 여긴 어떠냐, 같이 일하는 사람은 어떻냐 등의 얘기와 함께 밥을 먹었다. 평소처럼 지냈고, 다닐만 합니다. 여기도 회사죠. 그래도 일찍 퇴근하는 회사! 같이 일하는 사람은 제가 동양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아직 성선설을 믿고 있습니다. 과장님은 어떠세요. 별일 없으시나요. 나중에 뭐하시려고요. 역시 회사의 인재십니다 등의 말을 건냈다. 놀고 먹는 게 모토인 과장님은 여전히 모토대로 잘 살고 계시는 것 같았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니 즐거웠다. 당연한 얘기지만 안부를 물어 즐거운 게 아니라,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즐거웠다.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하며 카드를 꺼내 긁었다. 이왕에 스타벅스도 샀다. 점심시간이 곧 끝나 회사로 복귀해야 했다. 과장님은 외근이라셔서 스타벅스에 남아서 노트북으로 일을 조금 하신단다. "여기 스타벅스에 하연수 왔었어요." 라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회사로 복귀를 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좋은 순간이었다. 내가 잘나서 착해서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멀리서 찾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즐겁다. 논어에 "멀리서 벗이 찾아와주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표현이 있다. 대학교때 배웠던 거라 실감은 못하고 머릿속에만 넣은 단어였는데 어른이 되니 무슨 뜻인지 진정 알게 된 것 같다. 다만 내 식대로 조금 바꾼다면 "시간을 내어 벗이 찾아와주니 기쁘지 아니한가"로 할 수 있겠다. 멀든 가깝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들여 나를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다음주에 고등학교 때 성남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내 시간을 내어 친구들을 만나는 것처럼, 친구들도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난다. 모두에게 기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이유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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