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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Aug 18. 2019

커피를 끊었다

      회사 건너편 스타벅스가 7시에 연다. 회사 가기 전에 항상 먼저 스타벅스를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산다. 아침 공복에 마시는 아이스커피가 그렇게 안 좋다는 동료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요즘은 아침도 덥다. 더워 죽든 아이스 아메리카노 과다 섭취로 죽든 더 존엄한 죽음은 아마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인한 죽음일 거라 생각했다. 받자마자 바로 몇 모금 마시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집중력은 있어도 지구력은 약한 편이라 한 시간 집중하면 10분은 쉬고 싶다. 인간의 집중력 한계는 50분이라는데 회사 동료들은 집중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몇 시간을 앉은 자리에서 잘 견딘다. 내 책상서랍에는 편의점에서 산 맥심커피 한 박스가 엄마 몰래 서랍에 숨겨둔 군것질처럼 숨어있다. 점심 먹고 오후 3시쯤에 잿더미가 되버린 집중력을 다시 소생시키기 위해 커피믹스 한 봉지를 뜯는다. 출근 전 아이스커피, 점심 후 아이스커피, 퇴근 전 오후 3시쯤 커피믹스 한잔이면 벌써 커피가 세잔이구나. 퇴근하고 책을 읽거나 웹서핑을 카페에서 하는 편이라 커피 한 잔 더 마시면 커피만 네 잔이다. 중독이 안 되는 게 이상한 정도긴 하다.


     그런 커피를 끊었다. 남보다 비대한 편도선을 가진 죄로 급성편도염에 걸려 탄산음료고 커피고 마시지 말란다. 커피를 안 마시는 건 둘째치고 회사를 못나갔다. 급성편도염은 3-5일은 지나야 낫는다고 하고 푹 쉬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월요일에 연차를 냈다. 일은 쌓이지만 그래도 월요일 연차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내보겠나 하고 푹 쉬었다. 병원은 꼬박꼬박 갔다. 링거를 맞았다. 엉덩이 주사도 두 대나 맞았다. 여러 번 반복해도 익숙해 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엉덩이 주사를 맞는 것이다. 그렇게 어색한 순간이 없고, 그렇게 어색한 자세가 없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해서 맞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런 정성을 들였으니 의사선생님 말씀도 지극하게 따랐다. 커피와 콜라는 일체 마시지 않았다. 잠깐 생각해보니 '나'라는 전체보다 '편도선'이라는 일부가 더 대단해지는 순간인 거 같다. 몸의 한 부분, 부분들은 공부잘하는 내성적인 학생처럼 조용히 자기 할 일을 다 하다가도, 어딘가 망가지면 순식간에 미운 다섯살로 변해 목청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지르는구나 싶다.


     사실 예전에 커피를 끊은 적이 있다. 아파서 끊은 게 아니라 카페인에 중독된 거 같아 끊었다. 커피한테 지는 것 같아 끊었다. 주말에 늦잠자고 일어나서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두통이 지끈지끈거렸다. 누가 정수리에 못을 대고 망치로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연유를 모르겠어서 타이레놀을 먹으며 인터넷을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아무래도 카페인 결핍으로 인한 두통 같았다. 타이레놀을 두 알 씹어도 소용이 없었다. 일 할 때 집중을 위해서라며 커피를 마시다보니 (좀이 쑤실때마다 커피를 마셨다) 카페인에 중독된 것 같았다. 무엇에든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 이번 두통을 참고 카페인을 끊겠다며 무식하게 이틀을 두통에 시달리며 커피를 끊었다.


     이제 커피가 있던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할 지 고민이다. 당장 내일 무엇을 마시며 출근하나, 점심시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엇을 마셔야하나 녹차라떼는 커피값의 두 배라 아깝다. 오후 업무를 하다 좀이 쑤셔 탕비실로 가는길에 내 왼손에 든 잔 안에는 무엇을 담아야 하나. 퇴근한 카페에서 무엇을 마시며 책을 읽고, 노트북을 해야 하나 싶다. 이왕이면 마시면 마실수록 몸에 득이 되는 걸 마셔야겠다. 절제하지 않고 마음껏 마셔도 탈이 없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 마셔야겠다. 그런데 물도 많이 마시면 오히려 해롭다는데 마실 걸 무엇을 마실지 고민할 게 아니라 무엇이든 적당히 마셔야하는 게 더 중요한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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