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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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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Sep 23. 2019

뒷모습에 비치는 미소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칼퇴했다. 칼을 찬 장수처럼 서릿발 같은 기상을 뿌리며 씩씩하게 인사하고 회사를 나섰다. 내일 일은 내일로 두어라! 그러나 변함없이 내 일이겠지. 직장인에게 이 정도 행복만 허락 하여도 우리의 행복지수는 꽤 올라갈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퇴근길 콩나물시루 지하철에 내 한몸 보탤 것이라 걸음을 보챈다. 역에 도착하니 이미 줄이 길다. 이럴 땐 방법이 있다. 꽉 찬 지하철을 한 대 보내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린다.


     그러나 다음 지하철도 콩나물시루였다. 가방을 안고 테트리스 블록이 된 것처럼 몸을 집어 넣었다. 나는 마른편이니 'I'자 블록일 것이다. 대체로 환영받는 존재라 할 수 있다. 핸드폰도 못 꺼낼 정도라 머리 위 노선표를 보며 괜히 지하철역을 암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꽤 가다 환승을 위해 내렸다. 긴 환승통로를 걷다 고개를 드니 처음보는 여자가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인사를 마주해야 하나 싶었다. 움찔한 손이 민망해서 괜히 가방 어깨끈을 고쳐 잡는다. 옛 창피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저건 분명 나에게 하는 인사가 아닐거란 확신을 한다. 내 뒤에 누가 있나 확인하고 싶어 돌아보고 싶었으나 실례인 것 같아 참았다. 고개를 꼿꼿이 하고 그 사람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역시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뒤에 누구에게 인사했나 궁금해서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흔들던 여자의 뒷모습 너머로 저 건너편 남자가 마주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커플이었다. 머리 위로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하는 모습만 보고 단번에 커플이라 확신하기는 어렵다 할 수 있겠지만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남자의 얼굴에 쓰여있었다. 우리는 커플이라고. 그럼,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나는 늙지 않았지만, 보기 좋은 젊은 커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광경을 뒤로 하고 항상 내가 타는 번호로 걸어갔다.


    몇 걸음을 더 가다가 괜히 궁금하여 다시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서 인사하던 남자는 이제 등을 돌린채로 자신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방금 지나친 여자는 그래도 아까 그 자리에 계속 서 남자의 등을 바라 보고 있었다. 자신의 시야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배웅하고 있었다. 남자가 계단을 하나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그의 뒤통수가 위 아래로 출렁였다. 마치 파도 위 기분좋은 요트 같았다.


     뒤통수를 보고 다른 사람의 표정을 알 수 있는 재주는 없으나 아마 그 둘은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지하철 천장을 뚫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재주는 없으나 아마 밤 하늘은 맑았던 것 같다. 마침 그 때 기분좋은 노래가 에어팟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 같다. 노래가 좋아서인지 나도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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