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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Oct 26. 2023

신생아가 신생아를?

엉망진창 완벽주의 엄마라서

커피 한잔을 우아하고 느낌 있게 마시며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13년 전으로 돌아가본다.

막 결혼하자마자 1달이 채 될까 말까 했을 때, 첫째 꼬물이가 예고도 없이 그때부터 벌써부터 엄마 말도 안 듣고 갑자기 내 뱃속으로 찾아온 그 날!


아... 그런데 시작부터 별로 안우아하고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니 손가락이 잘 안 떨어진다.

한겨울에 식을 올려서 신혼여행으로 여름에 3달 정도 세계일주를 가려고 했는데 임신이 바로 되었다. 당연히 피임도 했는데. 그때 나에게는 아기라는 존재는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때이고(남편은 지금도 나에게 이 시절 이야기를 할 때 나의 신생아 시기 라고 한다-.-) 남편과 신나게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라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줄을 확인하자마자 그냥 바로 대성통곡을 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내 평생의 베스트 3위 안에 드는 버켓리스트가 바사삭 바스러지면서 그냥 그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망했다!!

놀란 남편은 일하다가 뛰쳐나오고, 우리는 바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산부인과에 들어가서 확인을 했다.병원 안에서 의사가 뭐라고 뭐라고 했는지 거기서도 울고불고했던 기억 밖에 없다.


그런데 나와서 다시 간판을 보니... '난임전문병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대구에서 유명한 곳, 먼 곳에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곳,모두가 애타게 힘들게 아기를 기다리는 곳.

평소에  크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산다고 생각했지만그때는 확실하게 내가 '완전 진상 짓 했구나' 싶었다.


경황이 없었다는 건 치사한 핑계 같다.

나는 남편 말대로 그냥 배고프고 기저귀 젖으면 '응애응애' 울어대는 신생아였다.

진짜 신생아가 그런 행동을 하면?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

어린아이가 철없는 행동을 하면? 자연스럽고 귀여운 것.

어른이 신생아처럼 어린애처럼 행동하면??

음....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다들 아니 굳이 쓰고 싶지 않다.


그러고 보니 결혼식을 하고 난 뒤 친한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처럼 부모님도 안쳐다보고, 하객들도 안 쳐다보고 신랑 얼굴만 계-속 보면서 웃는 신부는 처음 본다'고.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애틋하고 짠한 마음, 멀리서 다들 와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식에 하객들이 배고프거나 지루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같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마음 같은 건??

나는 나 이외에는 관심이 하나~~ 도 없는, 하늘 아래 나 밖에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철딱서니 없는 어른아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신 소식을 듣고 양쪽 집안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주 많이 기뻐하셨고, 남편도 내 눈치를 봐가면 남몰래 기뻐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달 뒤 정신연령0세 신생아 엄마가 진짜 레.알. 새빨간 신생아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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