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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Oct 26. 2023

프롤로그

하위 1% 엄마라서

솔직히 내가 여러모로 상위 1% 정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게 곱상한 외모 유전자를 받고, 엄마에게 공부머리 유전자를 받았다. 양쪽에서 손재주 좋은 것도 물려받아서 그림을 곧잘 그리던 나는 내가 꽤나 특별한 줄 알고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 특별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엄마가 되어 몇 년이 지나고 깨달았다. 내가 남들보다 특별히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자리에서 특별히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힘든 건 조금도 못 참는 신생아 수준의 정신력과 체력, 초등학생 수준의 공감 능력, 초예민 감각과 맞먹는 초짜증쟁이 성격, 한 번씩 발병하는 지랄병과 분노조절장애, 뭐 하나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 성향, 어디에 한 번 꽂히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정신 못 차리는 집착증, 내가 엄. 청. 좋아하는(몇 개 안 됨) 것 빼고는 관심도 없고 기억도 못하는 중증 주의력결핍장애 ADHD까지.

그러니 살림 솜씨는 당연히 말하나 마나지~처음 몇 년간은 거실 바닥 곳곳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와 찌꺼기들 때문에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발뒤꿈치를 들고 까치발로 걸어 다녀야 했고, 주부 경력 13년 차인 지금도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은 되도록 안 먹는 편이다.(왜 그럴까 상상에 맡긴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나의 엄마로서의 기본 자질은 잘 봐줘도 하위 1%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나에게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 공부나 성공보다도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인 내가 이 모양 이 꼴인걸 깨달았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엄마가 아니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내게 이러이러한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알지도 못하고 살았을 수도 있고, 어쩌다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어쩌겠어~ 그냥 생겨 먹은데로 살지 뭐~~ 하며 별 신경도 안 썼을 것 같다.

하지만 내 품에서 꼬물거리는 두 꼬맹이들을 지켜야 하기에 자존심, 자부심, 잘난 체 다 버리고 밑바닥에서라도 버텨야 했다.

특별히 훌륭한 엄마가 되어서, 특별히 잘난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포부는 특별한 하자 없는 평범하고 건강한 아이로 키워내야 한다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상위 1%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80점 맞으면 조금 아쉬운 점수이다. 하지만 하위 1%밖에 안 되는 재능으로 50점 맞으면 완전 대박 친 거다. 칭찬해줘야 하고 상 줘야 하는 거다. 그래서 나의 엄마점수 목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점이다.


이 책은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더 양육이라는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내가 스스로 해 주는 토닥토닥이다.

그리고 옆 동네에 또 있을지 모르는 (한 동네에 한 명 정도?) 나처럼 특별히 모자란 엄마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파이팅이기도 하다.


"괜찮아, 내 새끼들 나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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