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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Oct 26. 2023

다시 찾아온 후광!

엉망진창 완벽주의 엄마라서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게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숨기고 아이를 셋 이상 낳을 때까지 절대 보여주지 않아야 하는데, 방심하고 아이를 둘 낳았을 때 옷을 보여줘서 선녀가 양쪽 팔에 자기 아이를 한 명씩 안고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갑자기 하늘나라로 도망친 선녀 이야기가 왜 나왔냐 하면~

그렇게 꼬물이를 데리고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내가 이곳에서 엄마 역할을 끝까지 완수하려면 나도 아이가 1-2명 더 있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체력이 엄청 후달리고 선녀처럼 날지도 못하니 한 명만 더 있어도 절. 대. 로. 어디론가 떠나버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인생의 고난 2종세트 아빠와의 이별+첫 번째 육아를 동시에 체험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강력한 유일무이한 존재가 있다면 내 자식이라는 걸.

내 감정보다, 한계보다, 지랄병 증상보다 훨씬 센 그런 녀석들이 둘이나 있다면 아마 나는 앞으로 최소 20년 동안은(애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여기서 꼼짝 못 하겠지?라는 계산.


그나저나 선녀도 참 독하네 독해.

그래도 처음에 나무꾼이랑 살기로 했을 때는 좋아했을 거 아니야. 아무리 옷을 잃어버렸더라도 말이지. 같이 애까지 낳고 살다가 처녀 시절 화려한 옷을 찾더니 예전에 살던 하늘나라로 가버린다고?

아니 나무꾼이 다른 여자랑 살림이라도 차렸으면 몰라도 너무한 거 아닌가? 콩깍지 씌어서 따라갈 때는 언제고 콩깍지 벗겨지니 오두막이랑 나무꾼이 싫증 났던 건가?


물론 콩깍지 벗겨지고 난 후의 크나큰 실망감은 나도 잘 안다.

나는 금. 사. 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 스타일도 아닌데 남편을 보자마자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세 번째 만나고는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한 열 번쯤 만나 보고는 결혼할 남자구나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눈 돌아갈 만큼 잘생겼냐 그건 절대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 미안 여보 사랑해)

오래 사귄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집안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럼 어떻게 확신이 들었을까? 확신에는 그런 이유나 조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남편이 걸어올 때 얼굴 뒤로 '후광'이 환하게 빛났기 때문에!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닌데 뒤에서 누가 반사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번쩍번쩍거리니 당연히 확신이 들 수밖에.

그런데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남편을 보니... 환하게 비추던 조명이 탁 꺼져있네? (누가 불 껐어? 당장 나와!!) 띠로리~~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였다. 후광 효과가 사라지고 난 뒤에 남편을 보고는 진심으로 놀랐다. 내 사랑 내 왕자님은 어디 가고 웬 오징어 별에서 온 외계인이.. 말로만 듣던 사기결혼을 당한 건가? 나 이제 어쩌지? 싶고.

남편도 뭐 나랑 비슷했겠지.  '아.. 내가 불빛만 보고 좋다고 달려들던 불나방이었구나. 막상 옆에 붙어있으니 아주 그냥 뜨거워 타 죽겠네~~ 난 이제 망했네, 내 인생 어쩌지?' 싶었겠지.


그런던 중 우리는 선녀랑 나무꾼 부부꼴 나기 싫어서 서둘러서 둘째를 가지게 되었던 거다.

첫 번째 아기를 임신했을 때는 태교도 엄청 신경 쓰고 마음도 편안한 시기였는데 둘째 아이 때는 완전히 그 반대였다. 배가 남산만큼이나 불러왔어도 나는 여전히 밤만 되면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고, 옆에 남편이라도 있는 날에는 악을 써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그러고는 얼마나 자책감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배속의 아기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애가 혹시 나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지고 음침해지면 어떡하지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두 번째 아기 말랑이는 하늘이 내려준 '천하태평' 유전자를 장착하고 태어나 주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갓난아기가 자꾸 방긋방긋 웃길래 신기해서 물어보니 산후 조리원에서 아기를 돌봐주는 선생님도 '얘는 건드리기만 해도 살살 웃는 싱겁이예요, 싱겁이. 집에 데리고 가서도 잘 먹고  잘 잘 거예요"라고.

며칠 뒤 말랑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살포시 아기 침대에 눕히고 있는데, 세상에...

아기 머리 뒤에서 번쩍번쩍 눈부시게 후광이!!!

다시 나의 후광을 찾은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밤마다 울지 않게 되었다.

대신 말랑이에게 젖을 주며 쪽쪽 꼴깍꼴깍 빨아먹는 모습을 보고, 그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말랑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얼굴은 웃고 있어도 항상 두 발은 축축하고 차가운 신발을 신고 있는 듯했는데, 이제는 내 두 발도 서서히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기의 따뜻한 생명의 빛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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